이사회 여성 참여 ‘꼴찌’ 한국 ESG 후진국 될라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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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2월 28일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EC)는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EU-ETS)와 관련해 두 가지 사항을 새롭게 고쳤다. 배출권 가격의 하락을 막기 위해 과잉 공급된 배출권의 상당 부분을 기업에 할당하지 않고 예비(비축분)로 돌렸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차기로 이월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조치로 배출권 가격은 1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올랐고, 3년 뒤에는 4배로 치솟았다. EC의 개입으로 EU-ETS에 참여하는 기업 중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은 한순간에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이사회에 여성 참여가 늘었다는 점이다. 오염을 가장 적게 발생시키는 회사와 비교했을 때 오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던 회사는 EC의 개입 후 첫해에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7% 증가시켰다. 이사회 평균 규모가 12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사회에 약 1명의 여성 구성원이 추가됐다는 의미다.

 

E 압력을 S와 G로 해결하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영국·네덜란드·벨기에 등 국제연구팀이 ‘사업 전략과 환경(Business Strategy and the Environment)’이란 국제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알려졌다.

연구팀은 EU-ETS가 적용되는 20개 국가의 182개 오염 기업을 바탕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오염 배출이 많은 기업일수록 EU-ETS 개선 이후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증가했다. 오염이 심한 회사에서 기존의 남성 이사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우수한 자격을 갖춘 여성으로 교체한 결과다.

성(性) 사회화 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자기 성취보다는 도덕성에 관심을 갖게 되고, 윤리적 문제에 더 민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성은 비윤리적인 기업 행동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기업의 ESG 차원 사이의 복잡한 상호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E’ 차원의 압력에 충격을 받은 기업이 증가된 환경 압력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S’ 차원(성별 다양성 증가)과 ‘G’ 차원(이사회 조정을 통해)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 참여 늘면 기업 투명성 높아져

지난해 3월 영국 러프버러(Loughborough) 대학 연구팀은 같은 ‘사업 전략과 환경’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사회 구성원의 성별이 다양한 기업은 ESG 디커플링(decoupling)을 덜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ESG 디커플링’은 기업의 ESG 공개와 실제 ESG 성과 간의 격차를 말한다. 기업은 ESG 성과를 진실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공개해야 하지만, 일부 기업은 기회주의적으로 ESG 성과를 왜곡해 발표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ESG 디커플링’이 발생하게 된다.

연구팀은 한국을 포함한 29개국에서 2005~2019년 사이에 2만6176개의 기업-연도(Firm-year, 기업별 분석 햇수의 합계)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대규모 국제 표본을 사용한 우리의 실증적 결과에 따르면 이사회에 여성 이사가 더 많은 기업은 ESG 디커플링을 덜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기업의 ESG 관행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ESG 디커플링과 관련된 경영진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성 사회화 이론과 일치한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는 ESG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의사결정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 이사 임명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서 정책 입안자와 정부가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할당을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 비율 1.2%로 최하위

EU에서는 지난 2022년 6월 상장사 이사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기업 이사회에서의 성별 균형 지침에 합의한 바 있다. 해당 지침에 따라 2026년 6월 30일부터 유럽에서 운영되는 상장기업은 비상임 이사의 최소 40%를 '과소 대표되는 성별', 즉 여성으로 채우거나 상임이사·최고경영자(CEO)·최고운영책임자(COO)를 포함한 고위직의 33%를 과소 대표되는 성별로 채워야 한다. 직원 250명 미만의 기업은 이 지침을 적용받지 않는다.

러프버러 대학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한국의 경우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1.2%로 29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참조>

가장 높은 노르웨이 33.9%, 스웨덴 30.2%는 물론 평균인 13.6%에 크게 뒤진다. 중국은 10.8%, 일본은 3.2%였다.

논문 저자의 시각대로라면 한국은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낮아 ESG 디커플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ESG 실행에도 뒤쳐질 수 있는 셈이다.

논문에서 연구팀이 제시한 한국의 ESG 디커플링 지수는 2.228로 29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았다. 중국 2.224보다도 높았다. 스웨덴은 1.28에 불과했고, 평균은 1.876이었다.

한국보다 ESG 디커플링 지수가 높은 나라는 칠레(2.724), 일본(2.358), 러시아(2.335), 대만(2.936) 등이었다.

 

위기 대처 능력 떨어진다는 반론도

여성이 주도하는 기업이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반대 연구 결과도 없지는 않다.

스페인·영국 연구팀은 최근 ‘비즈니스 연구 저널(Journal of Business Research)’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기업의 회복 탄력성을 분석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이 2020년 5월~12월 34개국 1만1000개 이상의 기업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주도하는 기업이 회복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업을 다각화한 기업과 재택근무 도입 등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한 기업은 회복탄력성이 높았다.

연구팀은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진행된 조사라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팬데믹이라는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복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외부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과 남성 간의 디지털 격차로 인해 기업의 자금 조달 장벽이 발생하고, 외부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와 협력은 필수

이러한 연구 결과가 모든 사실을 다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복잡한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세상은 남성만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성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담고 있다.

이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보다는 성별을 다양화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때 기업은 외부에서 닥친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하고, 뛰어난 ESG 성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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