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3
조회수 200

383775fa91fc7.png

강의 가는 날 아침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몽상을 해보았다. 사람의 일생을 움직이는 것이 단 하나의 본능이나 가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가지 ‘유전자’의 줄다리기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전자는 실제 생물학적 유전자를 가리키기보다는,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근원적 동기 체계에 대한 비유에 가깝다. 나는 이를 임의로 ‘teme, gene, meme’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러보았다.

먼저 ‘teme’는 몸의 유전자다. 먹고, 쉬고, 안전을 확보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 즉 지금 이 순간의 안락과 생존을 향한 충동이다. 피곤하면 눕고 싶고, 배가 고프면 먹고 싶으며,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층위다.

둘째는 ‘gene’이다. 이는 말 그대로 번식을 향한 충동이다. 사랑, 성욕, 짝을 찾고 경쟁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남기려는 모든 행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단순한 성적 욕망을 넘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욕망 역시 상당 부분 이 축과 연결된다. 더 나은 조건의 짝을 얻고,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meme’이다. 이는 문화와 의미의 유전자다. 사람은 단지 살아남고 번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명예욕, 권력욕, 종교적 헌신,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망까지—이 모든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하려는 충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육체와 혈통을 넘어, 상징과 기억 속에서 지속되려는 욕망이다.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인간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어떤 사람은 하루의 대부분을 편안함과 안정에 쓰며 산다. 규칙적인 식사와 휴식,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삶—teme가 강하게 작동하는 경우다. 또 어떤 사람은 연애와 결혼, 자녀 양육, 사회적 경쟁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이는 gene의 발현이 상대적으로 강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반면,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보다도 어떤 사상이나 업적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밤을 새워 연구를 하고, 때로는 개인적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남기려 한다. 이런 경우 meme가 강하게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가지가 항상 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더 많다.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teme)은 경쟁과 노력(gene)을 방해하고, 가족과 안정된 삶(gene)은 더 큰 업적이나 명예(meme)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이상이나 업적(meme)을 위해 자신의 몸과 삶을 혹사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간의 삶이 흔히 ‘갈등’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이 세 가지 충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이 세 가지 ‘유전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그 발현의 상대적 비율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teme가 60, gene이 30, meme이 10일 수 있고, 다른 이는 meme이 50을 넘는 구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이 한 사람의 성향, 선택, 나아가 인생의 궤적까지 상당 부분 규정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물론 이 비율은 고정된 것이 아닐 것이다. 생물학적 유전처럼 일정 부분 타고나는 요소가 있겠지만, 환경 역시 강하게 작용한다.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 교육, 사회적 경험, 경제적 조건, 심지어는 역사적 상황까지도 이 세 유전자의 발현을 밀고 당긴다.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생존과 안락(teme)이 과도하게 강화될 수 있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gene이, 이념이나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는 meme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삶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세 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어 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중 무엇이 옳은가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이 과도하게 크고 무엇이 지나치게 작아져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삶의 방향은 단일한 답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 유전자의 미묘한 비율 조정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