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략산업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간·물·전기·환경·사람 5가지
입지는 종합적으로 판단·결정해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방송 인터뷰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람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터뷰에서 김 장관은 반도체 산업이 소비하는 막대한 전력 규모를 언급하며,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단지가 집중될 경우 전력망 구축 부담이 매우 커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전력이 충분한 지역에서 산업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 등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신호로 해석했다.
이에 기후부는 29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관련 발언의 취지는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 차이로 인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지산지소형(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구조)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를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을 설명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기후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를 둘러싼 논란은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중단하고 새만금 등 지방으로 옮겨야 할까.
◇시작은 2017년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이미 지나온 시간’의 무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흔히 “2019년에 시작된 사업이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졌다”는 식으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2019년 말은 이 사업이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시간이 투입된 이후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 시점에 가깝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최소한 2010년대 중반부터 산업 입지 검토와 사전 논의가 누적돼 온 장기 프로젝트다.
2019년 말, 용지 조성을 담당하는 특수목적회사(SPC) 용인일반산업단지가 한강유역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하면서 사업은 공식적인 행정 절차의 중심에 들어섰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은 결코 출발선이 아니다. 본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현장 생태 조사, 하천 유량과 수질 분석, 지하수 영향 검토, 대기·소음·교통 영향 예측, 평가서 초안 작성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등 수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고려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늦어도 2017~2018년 이전부터 실질적인 검토와 기획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사업이 본격적인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2019년 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이 반려되면서부터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인근 안성시 등 주변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서를 반려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적 보완 요구가 아니었다. 반려의 핵심 배경에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한강 수계에 미칠 수 있는 수자원 영향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사업은 약 1년 이상 사실상 정체 상태에 들어갔다. 설명회와 공청회가 반복적으로 열렸고, 용인시와 안성시를 포함한 인근 지자체 간 협의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생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수자원 관리와 관련한 약속이 포함된 협약이 체결된 뒤에야 2020년 말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됐다. 이 1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대규모 산업단지가 한강 수계라는 민감한 물 관리 체계 위에 놓일 때 어떤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간이었다.
2021년 3월에는 용인시가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산업단지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업은 곧바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원삼면 일대 주민들과의 토지 보상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 수용과 이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데에도 다시 약 1년이 소요됐다. 이 시점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아직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미 4~5년 이상의 시간이 행정 절차와 사회적 합의 형성에 투입된 상태였다.
◇한강 수계 수자원 논란의 본질― 물이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이 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수자원이 있었다. 반도체 공정은 하루 수만 톤에서 많게는 수십만 톤에 이르는 초고순도 공업용수를 필요로 한다. 이는 단순히 “물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하천 유량과 수질, 지하수위, 하류 지역의 물 이용 구조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북한강 수계에 새로운 댐 건설을 추진하는 바람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강 수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성격이 더욱 복잡해졌다. 한강 수계는 수도권 2000만 인구의 생활용수를 책임지는 핵심 수자원 체계다. 여기에 초대형 반도체 단지가 추가적인 물 수요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인근 지자체, 특히 하류에 위치한 안성시와 충청권 일부 지역에 강한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안성시 등에서는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가뭄 시에는 산업용수가 우선 배분돼 농업용수와 생활용수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물 배분의 우선순위라는 정치적·사회적 문제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환경영향평가서 반려라는 강한 조치가 나왔다.
한강 수계 수자원 논란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물 관리 체계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상황에서, 대규모 산업단지가 추가로 물을 요구할 때 그 부담은 필연적으로 하류 지역으로 전가된다. 이 갈등은 단순히 보완 대책을 몇 가지 추가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수자원 문제는 “해결됐느냐, 안 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는 합의에 도달했느냐”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2020년 말 환경영향평가 협의 완료는 문제의 완전한 해소라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만큼 한강 수계 수자원 문제는 이 사업의 가장 민감하고 정치적인 쟁점이었다.

◇전력망 건설 vs 새만금 신규 조성 ― 시간이 덜 걸리는 선택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최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장은 “전력망을 새로 까느니, 차라리 새만금에 처음부터 짓는 것이 빠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실제 소요 시간을 절차 단위로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용인으로 전력을 끌어오는 경우를 살펴보자.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전력망 확충은 기존 수도권 전력 시스템 위에 추가 설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전력 수요 예측과 계통 영향 분석, 송전선로와 변전소 후보지 선정,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과 보상, 실시설계, 공사 착수라는 단계가 필요하다. 국내 사례를 보면 신규 초고압 송전선로 하나를 완공하는 데 통상 5~7년이 소요된다. 주민 반발이 심한 경우에는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전력망 건설이 반도체 공장 건설, 산업단지 조성, 장비 반입 준비와 상당 부분 병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력망이 완공될 때까지 사업 전체가 멈춰 서 있는 구조는 아니다.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용인 전력망 확충에는 약 6~8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새만금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처음부터 조성하는 경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입지 선정과 국가 정책 결정, 국가산단 또는 특화산단 지정, 예비타당성 조사,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수자원 확보 계획 수립, 전력·교통 인프라 기본계획, 주민 의견 수렴과 보상, 실시설계까지 모든 절차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생략하기 어렵다.
유사한 대규모 국가산단 사례를 보면, 입지 검토부터 첫 공장 가동까지 최소 10~12년이 걸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새만금은 이미 환경 논란이 누적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크다. 시간만 놓고 비교하면, 용인에서 전력망을 보완하는 쪽이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명확히 빠르다.
◇새만금으로 옮길 때 발생할 또 다른 문제들 ― 환경영향평가, 수자원, 인프라의 현실
새만금은 흔히 “넓고 비어 있는 땅”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간 환경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다. 간척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 수질 악화, 내부 호수 관리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이런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우, 환경영향평가는 용인보다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폐수 처리 문제, 막대한 취수량, 열 배출은 새만금 내부 수질 관리와 직결된다. 이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부터 강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새만금에는 반도체 공정을 감당할 만한 자체 담수원이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결국 금강 수계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는 한강 수계에서 벌어졌던 것과 유사한 물 배분 갈등을 충청권과 전북권 사이에서 다시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과 물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초정밀 장비를 수송할 물류망, 글로벌 인력을 수용할 주거·교육·의료 인프라, 협력업체와 연구소를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새만금은 이러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결국 남는 질문 ― 용인을 고칠 것인가, 새만금을 새로 만들 것인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입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한강 수계라는 핵심 수자원 체계 위에 초대형 산업을 더 얹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동시에 새만금이라는 공간을 또 하나의 초자원 집약 산업 기지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시간만 놓고 보면, 용인에서 전력망을 확충하며 사업을 이어가는 쪽이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분명히 빠르다. 수자원 측면에서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한강 수계에서의 갈등이 금강 수계로 이동할 뿐이다.
에너지 지산지소도 좋고, 산업시설의 지방 분산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산업 경쟁력은 시간 싸움이기도 하다. 기업의 투자 의지도 중요하다.
결국 선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다. 이미 치른 비용과 시간을 인정하고 문제를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더 긴 불확실성의 시간을 감수할 것인 지의 선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은 한국 산업 정책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 전략산업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간·물·전기·환경·사람 5가지
입지는 종합적으로 판단·결정해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6일 방송 인터뷰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람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터뷰에서 김 장관은 반도체 산업이 소비하는 막대한 전력 규모를 언급하며,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단지가 집중될 경우 전력망 구축 부담이 매우 커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전력이 충분한 지역에서 산업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 등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신호로 해석했다.
이에 기후부는 29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관련 발언의 취지는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 차이로 인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지산지소형(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구조)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를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을 설명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기후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를 둘러싼 논란은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중단하고 새만금 등 지방으로 옮겨야 할까.
◇시작은 2017년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이미 지나온 시간’의 무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흔히 “2019년에 시작된 사업이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졌다”는 식으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2019년 말은 이 사업이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시간이 투입된 이후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 시점에 가깝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최소한 2010년대 중반부터 산업 입지 검토와 사전 논의가 누적돼 온 장기 프로젝트다.
2019년 말, 용지 조성을 담당하는 특수목적회사(SPC) 용인일반산업단지가 한강유역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하면서 사업은 공식적인 행정 절차의 중심에 들어섰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은 결코 출발선이 아니다. 본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현장 생태 조사, 하천 유량과 수질 분석, 지하수 영향 검토, 대기·소음·교통 영향 예측, 평가서 초안 작성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등 수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고려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늦어도 2017~2018년 이전부터 실질적인 검토와 기획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사업이 본격적인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2019년 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이 반려되면서부터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인근 안성시 등 주변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서를 반려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적 보완 요구가 아니었다. 반려의 핵심 배경에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한강 수계에 미칠 수 있는 수자원 영향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사업은 약 1년 이상 사실상 정체 상태에 들어갔다. 설명회와 공청회가 반복적으로 열렸고, 용인시와 안성시를 포함한 인근 지자체 간 협의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생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수자원 관리와 관련한 약속이 포함된 협약이 체결된 뒤에야 2020년 말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됐다. 이 1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대규모 산업단지가 한강 수계라는 민감한 물 관리 체계 위에 놓일 때 어떤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간이었다.
2021년 3월에는 용인시가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산업단지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업은 곧바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원삼면 일대 주민들과의 토지 보상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 수용과 이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데에도 다시 약 1년이 소요됐다. 이 시점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아직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미 4~5년 이상의 시간이 행정 절차와 사회적 합의 형성에 투입된 상태였다.
◇한강 수계 수자원 논란의 본질― 물이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이 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수자원이 있었다. 반도체 공정은 하루 수만 톤에서 많게는 수십만 톤에 이르는 초고순도 공업용수를 필요로 한다. 이는 단순히 “물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하천 유량과 수질, 지하수위, 하류 지역의 물 이용 구조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북한강 수계에 새로운 댐 건설을 추진하는 바람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강 수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성격이 더욱 복잡해졌다. 한강 수계는 수도권 2000만 인구의 생활용수를 책임지는 핵심 수자원 체계다. 여기에 초대형 반도체 단지가 추가적인 물 수요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인근 지자체, 특히 하류에 위치한 안성시와 충청권 일부 지역에 강한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안성시 등에서는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가뭄 시에는 산업용수가 우선 배분돼 농업용수와 생활용수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물 배분의 우선순위라는 정치적·사회적 문제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환경영향평가서 반려라는 강한 조치가 나왔다.
한강 수계 수자원 논란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물 관리 체계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상황에서, 대규모 산업단지가 추가로 물을 요구할 때 그 부담은 필연적으로 하류 지역으로 전가된다. 이 갈등은 단순히 보완 대책을 몇 가지 추가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수자원 문제는 “해결됐느냐, 안 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는 합의에 도달했느냐”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2020년 말 환경영향평가 협의 완료는 문제의 완전한 해소라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만큼 한강 수계 수자원 문제는 이 사업의 가장 민감하고 정치적인 쟁점이었다.
◇전력망 건설 vs 새만금 신규 조성 ― 시간이 덜 걸리는 선택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최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장은 “전력망을 새로 까느니, 차라리 새만금에 처음부터 짓는 것이 빠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실제 소요 시간을 절차 단위로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용인으로 전력을 끌어오는 경우를 살펴보자.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한 전력망 확충은 기존 수도권 전력 시스템 위에 추가 설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전력 수요 예측과 계통 영향 분석, 송전선로와 변전소 후보지 선정,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과 보상, 실시설계, 공사 착수라는 단계가 필요하다. 국내 사례를 보면 신규 초고압 송전선로 하나를 완공하는 데 통상 5~7년이 소요된다. 주민 반발이 심한 경우에는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전력망 건설이 반도체 공장 건설, 산업단지 조성, 장비 반입 준비와 상당 부분 병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력망이 완공될 때까지 사업 전체가 멈춰 서 있는 구조는 아니다.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용인 전력망 확충에는 약 6~8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새만금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처음부터 조성하는 경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입지 선정과 국가 정책 결정, 국가산단 또는 특화산단 지정, 예비타당성 조사,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수자원 확보 계획 수립, 전력·교통 인프라 기본계획, 주민 의견 수렴과 보상, 실시설계까지 모든 절차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생략하기 어렵다.
유사한 대규모 국가산단 사례를 보면, 입지 검토부터 첫 공장 가동까지 최소 10~12년이 걸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새만금은 이미 환경 논란이 누적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크다. 시간만 놓고 비교하면, 용인에서 전력망을 보완하는 쪽이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명확히 빠르다.
◇새만금으로 옮길 때 발생할 또 다른 문제들 ― 환경영향평가, 수자원, 인프라의 현실
새만금은 흔히 “넓고 비어 있는 땅”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간 환경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다. 간척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 수질 악화, 내부 호수 관리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이런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우, 환경영향평가는 용인보다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폐수 처리 문제, 막대한 취수량, 열 배출은 새만금 내부 수질 관리와 직결된다. 이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부터 강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새만금에는 반도체 공정을 감당할 만한 자체 담수원이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결국 금강 수계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는 한강 수계에서 벌어졌던 것과 유사한 물 배분 갈등을 충청권과 전북권 사이에서 다시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과 물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초정밀 장비를 수송할 물류망, 글로벌 인력을 수용할 주거·교육·의료 인프라, 협력업체와 연구소를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새만금은 이러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결국 남는 질문 ― 용인을 고칠 것인가, 새만금을 새로 만들 것인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입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한강 수계라는 핵심 수자원 체계 위에 초대형 산업을 더 얹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동시에 새만금이라는 공간을 또 하나의 초자원 집약 산업 기지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시간만 놓고 보면, 용인에서 전력망을 확충하며 사업을 이어가는 쪽이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분명히 빠르다. 수자원 측면에서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한강 수계에서의 갈등이 금강 수계로 이동할 뿐이다.
에너지 지산지소도 좋고, 산업시설의 지방 분산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산업 경쟁력은 시간 싸움이기도 하다. 기업의 투자 의지도 중요하다.
결국 선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다. 이미 치른 비용과 시간을 인정하고 문제를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더 긴 불확실성의 시간을 감수할 것인 지의 선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은 한국 산업 정책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