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과 고해소에서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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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대체로 두 가지 자리에 앉게 된다.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자리다.

하나는 병원 진료실 앞 대기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성당 고해소 앞의 조용한 줄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기에 마주하게 되는 이 두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병원에서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고 의사를 만난다. 숫자와 그래프가 빼곡한 종이를 사이에 두고, 의사는 묻는다. 어디가 불편한지, 생활은 어떤지. 그때마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크게 아픈 건 아닌데요.” “참을 만해서 그냥 지냈습니다.” 바쁜 진료실 분위기 속에서, 혹은 괜히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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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고해소도 비슷하다. 신부는 조용히 기다린다. 건너편의 신자가 지난 성사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이 마음에 남아 있는 지를 자세히 말해주기를.

그런데 고백은 종종 형식이 된다. 머리 속에 담아온 문장을 빠르게 읽듯이, 혹은 남들도 다 하는 말만 골라서 털어놓는다. 신부들이 “형식적인 고백은 고백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드러내지 않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병원 진료와 고해성사는 목적이 닮아 있다. 하나는 몸을 살피기 위한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과 삶을 돌아보는 자리다.

하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몸의 문제든, 마음의 문제든, 숨기거나 축소하면 정확한 진단은 불가능하다. 병을 제대로 알려야 치료를 받을 수 있듯, 삶의 어두운 구석을 솔직하게 내놓아야 변화가 시작된다.

의사 앞에서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나약해 보일까 봐, 관리하지 못한 삶을 들키는 것 같아서 주저하게 된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다. 잘못보다 그 잘못을 가능하게 한 나 자신의 태도를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무난하게 지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말이라는 시간은 그런 태도를 조금 바꿔 보라고 조용히 권하는 것 같다. 한 해 동안의 몸과 마음을 점검하는 시기, 의사와 신부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사실 같은 질문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 질문에 얼마나 정직하게 답하느냐에 따라, 다음 한 해 삶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다. 말이 엉켜도, 준비가 덜 되어 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성의 있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태도다.

병원 진료실과 고해소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솔직해질 수 있다면, 연말의 이 두 자리는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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