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과학자와 대중 사이에서 - 한국기후변화학회 특강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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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기후변화학회의 언론상을 받으시는 MBC 김민욱 환경전문기자와 그리니엄 윤원섭 기자, 김지연 기자께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귀한 행사에 저를 불러주신 김호 학회장님, 전 학회장님이신 전의찬 교수님, 차기 회장이신 송영일 박사님 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해 10월 말 중앙일보에서 정년 퇴직했습니다.

지난해 기후변화학회에서 주신 상은 제가 30년 환경전문기자 생활을 마감하면서 받은 것이라서 제겐 의미가 컸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1년 저에게 변화가 많았습니다.

30년을 건너뛰어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인류세와 기후 위기’, ‘환경과 삶’, ‘기후변화와 건강 위기’ 같은 강의도 하고,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현장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월부터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일 때에는 옆에서 지켜만 보았는데, 이제 광화문에서, 해운대 백사장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직접 구호를 외치고 시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8개 중앙일간지에 게재된 연도별 '기후 변화' 기사 건수. 국제회의가 열린 해에 보도가 많았다. 강찬수.


기후변화 기사 건수는 국제 이벤트에 따라, 국내외 경제 상황에 따라 크게 요동칩니다.

정치 지형에도 민감합니다.

이번 탄핵 정국 동안 기후 기사가 지면에서, 화면에서 사라질까 걱정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던, COP3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다 2007년 IPCC 4차 평가보고서가 나오면서 제 개인적으로는 수질, 녹조, 4대강 사업과 함께 두 가지 중요한 이슈가 됐습니다.

 

기후 분야에서 일하시는 전문가들과 대중을 이어주는 역할하는 게 저희 기자들의 본분이겠지요.

대다수 전문가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후변화의 실상을 전하고,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기자들이 그런 점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면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탄소중립 로드맵, 에너지 기본계획 등을 포함해 정부의 감축, 적응 정책을 제대로 파헤치고 분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려운 내용, 딱딱한 내용, 복잡한 내용이라며 언론에서 중요한 연구 결과를 외면한 적은 없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기후 과학의 성과는 느리고, 신중하고, 저널 발표 논문은 어렵고 모호합니다.

기후변화 뉴스에 익숙해진 대중은 시큰둥하고, 쉽게 식상합니다.

그렇다고 매일 자극적인 뉴스만 보도할 수도 없습니다.

저희 기자들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언론 종사자들은 시간적, 공간적, 인간적으로 멀리 내다보지 못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아마 2000년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2100년이면 기후변화로 인해 어쩌구...” 하는 기사를 썼는데, “2100년이면 지금 편집국에 있는 사람 중에 누가 살아있기나 하겠어”하며 핀잔을 편집국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이런 편집국장은 없겠지요.

 

언론에서는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과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크게 차이를 둡니다.

해외에서 기후변화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얘기는 지면 배정에서, 뉴스 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어렵사리 시베리아 현지를 다녀와 기사를 써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한국과 관련이 있어?”하는 질문에 가슴이 턱 막히곤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해외 기후변화 현장 취재 사례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수상하시는 분들이 대표적으로 해외 취재를 많이 하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언론계 전반으로 더 보편화될 필요도 있습니다.

 

기자들도 요구하고 있듯이,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도 적극적인 취재가 필요합니다.

회사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사항입니다만, 회사의 지원은 사회적 관심도와도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모두 여섯 차례 다녀왔습니다.

환경부 풀-기자단 제도 덕분입니다.

당사국총회를 비롯해 해외 취재 때 외부 지원을 받는 문제와 관련해 고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공개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취재단이 구성된다면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도 기후변화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폭염이, 겨울이면 한파가 쪽방촌 거주자나 노숙자 등 어려운 이들을 위협합니다.

언론에서는 해마다 캘린더 식으로 이들을 다루지만,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지도, 끈질기게 보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합니다.

환경캠페인도 정말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만큼 깊게 고민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지 되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환경캠페인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도와준 꼴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후변화 이슈가 국내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가 됐습니다.

제가 있던 중앙일보에서도 기후 변화는 9월 창간기념호의 단골 주제가 됐습니다.

다만 흥미 위주가 아닌가, 일회성이 아닌가 하는 고민은 계속 남아있습니다.

 

한국의 기후 저널리즘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 소송에도 나선 것처럼 자기 주장이 강한 미래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국내외 취약 계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휩쓰는 기후 관련 전염병, 해수면 상승, 녹아내리는 빙하 등을 꾸준히 보도해 국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피해도 더 많이 전해야 합니다.

먹거리 물가나 농업 어업 피해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물종의 상황을 보고하고 멸종위기를 막아야 합니다.


종합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생물다양성, 플라스틱 오염, 팬데믹 등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상호작용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해결을 어렵게도 합니다.

각각의 주제만 떼어놓고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저는 ‘환경신데믹연구소’를 만들었고,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어려운 취재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자들의 자구책도 필요합니다.

회사 내 기후환경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자들의 모임을 동아리 형태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편집국, 보도국 내에 느슨한 형태의 특별취재팀을 상시 가동하다가 필요할 때 본격 가동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기자클럽, 기자협회 등을 활성화해 공동 취재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들으며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외부 학회나 재단, NGO 등과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한국의 기후 저널리즘은 국내 정치 상황이 가장 어두운 지금 희망을 봅니다.

바로 정치교육의 필요성,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청에서 시민들에게 포토샵이나 챗GPT 사용법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교육, 환경교육도 진행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교육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면 시민들은 올바른 정치의식을 갖게 되고, 미래세대를, 사회적 약자를, 다른 생물종을 배려하는 기후 유권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환경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헌법이 개정된다면, 기후 문제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입니다.

5년 단임의 권력구조가 만든 근시안적 기후정책도 달라질 것입니다.

기후를 생각하는 유권자가 늘어난다면 정치도 달라지고, 기후 저널리즘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이 어둠의 끝에는 밝은 아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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