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조류 충돌' 탓이라는데...국내 공항 안전대책은?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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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명 탄 여객기 무안공항서 충돌 참사
관계 당국 정확한 사고원인 파악 중이지만
“철새 떼와 사고 항공기 충돌” 목격담 나와
국내 공항 조류 충돌 우려 전부터 제기돼
가덕도 신공항 등 추진에도 논란 확대될 듯

29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공항에서 승객 175명을 태운 여객기가 착륙 중 공항 벽과 충돌해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충돌·화재 사고는 항공기가 착륙 과정에서 새 떼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1차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분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항공기 기체는 활주로 외벽에 충돌하면서 반파됐고, 불길에 휩싸였다.
항공기 기체는 꼬리 칸을 제외하면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불에 탔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B737-800 기종으로,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이 타고 있었으며, 승객은 한국인이 173명이고 나머지 2명은 태국인이다. 소방 당국은 오전 9시 46분쯤 초기 진화를 마치고 생존자 구조에 나섰지만, 구조된 승무원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사망했다.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 중이던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울타리 외벽을 충돌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인명 구조를 하는 모습. 


‘펑’ 소리와 함께 오른쪽 엔진에서 불길
이와 관련해 사고 여객기가 새 떼와 충돌 후 엔진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이날 오전 무안공항 인근 바닷가에서 낚시하던 정모(50) 씨의 목격담을 전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에 착륙하려고 하강하던 중 반대편에서 날아온 새 무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일부 새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간 듯 2∼3차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엔진에서 불길이 보였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여객기는 다시 상승했지만 높이 오르지 못했다고도 전했다.
정씨는 “착륙 과정에서 여객기가 머리 위를 지나갔는데 맨눈으로 봤을 때 랜딩기어(바퀴)는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인근 펜션에서 투숙 중이던 유재용(41)씨는 “펜션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봤는데 우측 날개 엔진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추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고가 조류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착륙 도중 비행기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아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가 사고가 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조류 충돌 정황 등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무안국제공항 관제탑에서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에 착륙 직전 '조류 충돌' 주의를 줬다"면서 "조류 충돌 경고 약 1분 후 조종사가 조난신호인 '메이데이'를 요청했고, 이후 약 5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류-항공기 충돌 5년간 623건
시속 300km로 운항하는 항공기가 무게 1.5kg의 새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는 약 4033주울(J)에 해당한다. 이는 무게 1.5kg의 쇠공이 시속 264km로 단단한 벽에 충돌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 수준이다. 이러한 충돌은 운동에너지로 인해 항공기의 엔진, 날개, 또는 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비행 지연·취소 등으로 인해 국제 민간 항공 산업에는 연간 14억 달러(약 2조 원)가 넘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세계 항공시장이 조류 충돌 대응에 매년 1조원을 지출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스위스 클로텐 인근 취리히 공항에 터키항공의 에어버스 A321 항공기가 착륙할 때 새 떼가 날아가고 있다.


버드 스크라이크에 의한 항공기 사고는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우려가 제기된 상황이다. 국내에서 운항 중인 항공기에 부딪혀 죽은 새가 확인된 것만 지난 5년 사이에 623마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전용기(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6개월간 국내 공항에서는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이 623건 발생했다.
조류 충돌은 이착륙·순항하는 항공기 엔진·동체에 새가 부딪히는 사고로 탑승객 안전 문제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연도별로 보면 조류 충돌은 2019년 108건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운송량이 감소한 2020년 76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109건, 2022년 131건, 지난해 152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두 기관이 일정 고도 이하에서 발생한 조류 충돌만 집계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사고는 더 잦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조류 충돌로 회항한 항공기도 7편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지난 2월 6일 막 이륙해 17피트(약 5.2m) 떠오른 항공기 엔진과 착륙기어에 새가 날아들면서, 6월 24일에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던 항공기 전면에 새가 부딪히면서 회항하는 일이 있었다.
두 공사는 조류 충돌 증가세와 관련해 코로나19 종식 이후 여객 실적이 회복한 점, 기후변화와 공항 주변 개발사업으로 조류 서식지가 감소한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최첨단 스텔스기도 조류충돌로 폐기 처분
민간항공기 외에도 2022년 1월 독수리와 충돌한 뒤 활주로에 비상 착륙한 5세대 최첨단 스텔스전투기 F-35A가 수리 비용 과다로 결국 도태됐다. 이 기체가 공군에 도입된 것은 2020년으로, 운용 2년 만에 더는 제 기능을 못 하고 폐기 처분된 것이다. 해당 전투기는 2022년 1월 4일 청주기지를 이륙해 사격장 진입을 위해 약 330m 고도에서 비행하던 중 독수리와 충돌했다.

사고 직후 겉으론 손상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나, 군은 미국 정부사업단, 기체 제작사인 록히드마틴 등과 함께 정밀 조사를 한 결과 기체와 엔진, 조종·항법 계통 부품 등 여러 곳에서 손상을 확인했다. 이에 따른 수리 복구 비용은 약 1400억원으로 집계돼, 새로 구매하는 비용(약 1100억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수리에 4년 이상 걸리고, 복구 후 안전성 검증 절차를 밟는 것도 쉽지 않아 도태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공항들은 철새도래지와 가까워
이번 사고는 무안국제공항이 서해안 철새도래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안공항은 국내 공항 중 조류충돌 위험이 가장 큰 공항으로 통한다.
서해안 갯벌은 장거리 이동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이동 중에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얻는 곳이라 철새들이 많이 찾는다. 갯벌을 메운 간척지에는 수확 후 남은 낱알을 먹기 위해 겨울 철새들이 몰려든다.
지난 10일 해양수산부는 무안국제공항 인근 갯벌을 습지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했다. 이는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철새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안국제공항의 경우 인근에 갯벌이 많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0일 무안 갯벌의 연안습지보호구역 면적을 기존 42㎢에서 113.34㎢로 대폭 확대했다.


특히 무안국제공항은 운항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이 0.09%로 인천공항을 제외한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무안국제공항 내 항공기 조류 충돌 발생 건수는 2019년 5건, 2020년 1건, 2021년 0건, 2022년 1건, 지난해 2건이었고, 올해도 지난 8월까지 1건이 발생하는 등 총 10건이 발생했다. 착륙 시 약 60m, 이륙 시 150m 이하에서 발생한 사고를 집계한 수치다.
제주국제공항의 경우 6년간 총 92만6699편의 여객·화물기가 이·착륙했고, 같은 기간 조류충돌 사고는 119건 발생해 발생 비율은 0.013%였다.

세계 각국 공항, 철새 쫓기에 골몰
공항에서는 철새를 쫓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새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보내기도 하고, 총이나 폭죽을 쏘기도 하지만, 효과는 그때 뿐이다. 무인항공기(드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매를 닮은 비행 로봇이 개발됐다. 연구팀은 새들을 포식하는 맹금류인 매를 본떠서 원격 제어 비행 로봇을 제작했고, 네덜란드 월컴(Workum) 공항에서 새 쫓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드론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무안공항은 착륙 직전 조류 충돌 위험을 경보했을 뿐 사전에 새때를 쫒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인천공항 야생동물통제대원이 인천공항 활주로 인근에서 조류 퇴치 작업을 하는 모습. [인천공항공사 제공] 


새로 짓는 공항들 철새 충돌 논란
국내 공항 건설 과정에서는 철새 보호와 버드 스트라이크 문제가 항상 논란이 되곤 했다. 국립공원 구역을 해제하면서까지 허가한 흑산도 공항이 대표적이다.
환경영향평가를 앞둔 제주 제2공항은 8km 떨어진 곳에 구좌읍 하도 철새도래지가 있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결과, 항공기 조류 충돌 위험이 기존 제주공항보다 2.7~8.3배 높다고 지적했다.
실시설계와 환경·재해 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를 이행 중인 새만금공항도 인근 수라갯벌을 찾는 철새 때문에 환경단체의 반대가 심하다.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연합뉴스]


한반도 동남권 거점 공항으로 새로 건설될 예정인 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경우도 낙동강 하구 을숙도 등과 가까워 버드 스트라이크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KEI는 “공항 주변 도시개발로 조류 이동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조류 충돌 위험성도 증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2024년 12월 2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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