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이 지구 환경을 파괴할 수도 있다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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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쌀·밀 수매제 지하수 고갈 초래

과잉생산 곡물 수출이 물부족 부채질

각국 화석연료 보조금 온난화 부추겨

농업 보조금 오염과 삼림파괴 낳기도

한번 도입된 보조금 폐지하기 어려워

대안 검토한 다음 신중하게 도입해야

 

논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 여성들.


각국 정부가 농업을 장려하고 환경에 좋은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좋은 의도로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보조금이 오히려 환경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특히 보조금은 한번 도입되면 없애기 어려운 만큼 정책 입안자가 처음 도입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고등국제연구대학원과 코넬·스탠퍼드 대학 등의 연구팀은 인도의 농업 보조금이 수자원 고갈에 미친 영향을 다룬 논문을 6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인도에서는 시장보다 높은 가격, 고정된 가격에 작물을 수매하는 생산 보조금이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쌀과 밀의 과잉 생산을 초래했고, 이는 지하수위가 가라앉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는 선의이지만 설계가 잘못된 보조금이 환경에 해로운 외부 효과를 부과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훼손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쌀과 밀은 인도의 14억 인구가 섭취하는 열량의 50% 이상을 공급하지만,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보조금은 30%에 이르는 과잉 생산을 낳았고, 과잉 생산은 다시 지하수 고갈을 불러왔고, 지하수 고갈은 작물 수확량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쌀 수매 제도 도입 후 지하수위 하강

인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하수 소비가 500% 증가해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수 낭비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하수가 놀라운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데, 1980년대 이후 지하수위는 평균 8m 이상 떨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위가 지표면 아래 30m까지 떨어졌다.

인도 북서부 펀잡 주에는 1960년대에 쌀 수매 제도가 도입됐다. 국가 식량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고수확 품종 종자를 장려하는 녹색 혁명의 일환이었다.

인도의 쌀과 밀 과잉 생산. [자료: Nature Communicatiuons, 2024]


농민들에게는 고수익을 보장해 주는 제도였지만, 이는 지하수 고갈로 이어졌다. 평균 지하수 깊이는 1973년 지표면 아래 4.82m에서 2016년 14.55m로 내려갔다. 이 바람에 1999년에는 1973년 당시 사용하고 있던 우물의 78.6%가 폐쇄됐다.

연구팀은 “지하수 깊이가 연간 1.2~2%포인트씩 내려갔는데, 이는 지난 34년 동안 총 50~65% 내려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쌀 수매로 인해 쌀 경작이 늘어난 것만으로 1981~2015년 사이 펀잡 지역 지하수위 감소의 최소 50%를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주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 도입된 밀 수매 제도로 2007~2016년 사이 밀 재배와 수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말라붙은 우물의 비율을 5.3%포인트 증가시켰고, 결과적으로 깊이 파들어가는 심관 우물을 3.4%포인트 증가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비고적 짧은 시기에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데, 밀 수매가 계속된다면 펀잡에서 볼 수 있듯이 마디아프라데시에서도 지하수 스트레스가 상당히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 부족에도 보조금 탓에 곡물 과잉 생산

인도의 경우 1인당 담수 수자원량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고, 수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인도는 농산물 형태로 매년 250억㎥의 물을 수출하고 있다. 이른바 가상수(假想水, virtual water)다. 보조금 탓에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수출한 결과다.

연구팀은 “인도에서 농업 보조금이 국내 총생산(GDP)의 약 2~2.5%를 차지하지만, 농업 연구 및 인프라와 같은 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공공 지출은 미미하다”면서 보조금 정책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한 연구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소득 이전이나 가격 폭락에 대한 보험으로 보조금을 제공하는 쪽을 선택했지만, 인도에서는 물을 많이 사용하는 쌀과 밀에 대해서만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식이었고, 이것이 재앙을 초래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보조금 프로그램이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정책 입안자에게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4,560억 달러가 농업 생산자에게 지원되는데, 환경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정책 입안자들이 지속 가능하고 공정하며 효율적인 농업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다.

 

보조금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편, 미국 코네티컷 대학 경제학과 캐슬린 세거슨 교수 등 세계 각국의 전문가 25명도 지난 4일 ‘사이언스(Science)’ 저널의 ‘정책 포럼’ 코너에 기고한 글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이들 전문가는 “보조금이 사람과 지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상당한 단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보조금이 장단기적으로 사회와 지구에 순이익이 되도록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의 보조금이 환경 및 지속 가능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로 전기 자동차(EV)나 태양광·풍력 등 특정 유형의 투자 또는 특정 상품의 구매나 생산에 대해 세액의 공제 또는 면제가 있을 수 있다. 삼림 벌목을 줄이는 등 보존 관련 활동 또는 생태계 서비스 제공에 대해서도 보조금이 지급된다.

대표적으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인플레이션 감소법(IRA) 역시 EV, 재생 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개선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조금은 ‘당근’을 포함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세금이나 규제(채찍)보다 도입하기가 쉽고, 때로 핵심 이익 집단의 지원을 사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화석연료 보조금 연간 1735조 원

전문가들은 보조금이 결과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했을 때 더 시장 자체가 커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전기 자동차(EV) 구매에 대한 미국 연방 소득세 공제의 70%는 세금 인센티브 없이도 전기 자동차를 구매했을 사람들에게 제공된 것으로 추산된다. [자료: Science, 2024]

EV의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보급이 늘어났을 수도 있다. 보조금이 없었을 때와 비교해서 보조금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거뒀는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추가성 문제).

직접적으로는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이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키고 더 빠른 기후변화를 초래한다. 2022년 전 세계적으로 명시적 화석 연료 보조금은 1조 3,000억 달러(약 1753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농업 보조금의 경우 비료 과다 투입으로 질소로 인한 수질오염의 17%를 유발하고, 글로벌 삼림 벌채의 14%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전 세계 어업 보조금 354억 달러 중 약 70%는 어업 능력을 강화하는 데 지원되었는데, 이는 과도한 어업, 남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화석 연료, 농업 및 어업 산업에 대한 환경적으로 유해한 보조금을 없애거나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10년 전 G20 지도자들은 비효율적인 화석 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약속했고,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어업 보조금 협정과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유해한 보조금을 줄이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국내 화석연료 보조금 11조 원 수준

국내에서도 화석연료에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임현지 부연구위원은 "정부 11개 부처가 화석연료에 지원한 지원금이 2023년 11조 700억원, 2024년 10조 5100억원으로 집계됐다"며 "재생에너지에 지원한 보조금은 2023년 1조6900억원, 2024년 1조1400억원이었다"고 밝혔다.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이 재생에너지에 지원하는 것의 거의 10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임 부연구위원은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박정 위원장이 주최하고 녹색전환연구소와 나라살림연구소, 랩2050 등이 주관한 토론회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화석연료 보조금, 교통에너지환경세, 배출권거래제, 어떻게 뜯어고칠까?"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지원 유형별로는 유류세 인하 등과 같이 세금 혜택이 7조 원 이상으로 가장 컸고,  유가 보조금과 같은 직접 이전이 3조원 규모였으며, 연구개발 예산  3000억 원 수준을 차지했다.

임 부연구위원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계속 지원하면서 기후대응 예산은 예산대로 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며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기한 설정과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폐지 수단까지 미리 마련해야

하지만 보조금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제정되면 보조금을 유지하는 데 강한 관심을 가진 집중적이고 강력한 수혜자 그룹이 생겨나서 폐지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고에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절하게 설계된 보조금은 필요한 변혁적 변화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도 보조금을 도입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충고했다.

정책의 영향과 정책 목표는 시간이 지남에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안적인 실행 가능한 방법을 먼저 고려한 후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도입할 게 아니라 보조금이 아닌 다른 제도로 원하는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하라는 얘기다.

나중에 보조금을 폐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폐지를 못하는 ‘잠금’을 피하기 위한 계획도 미리 고려해야 한다.

보조금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조금을 개편하거나 필요하면 보조금을 쉽게 폐지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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