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에서 상쇄 배출권 구매 많은
쉘·델타항공·보잉 등 세계 각국 20개 대기업
4년치 배출권 실제 탄소감축 효과 상세 평가
기후기여 3가지 요건 중에서 한 가지만 충족
감축 효과 부풀리고, ‘추가성’도 과장된 상태
교토대 연구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논문
아프리카 케냐의 혼게라 재조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캐냐 쿠투스 지역의 두 학생이 학교에서 묘목을 심고 있다. [자료: DGB Group]
셸·세브론·델타항공·보잉 등 세계적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탄소 상쇄(offset)를 적극 활용하지만, 탄소 감축 효과가 실제보다 크게 과장됐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기업들은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에서 배출권을 구입, 자신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지만, 값싸고 질 낮은 배출권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VCM은 2022년 기준으로 약 20억 달러(약 2조6600억 원) 규모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기업들의 탄소 배출권 수요가 증가하면서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
일본 교토대학과 독일 함부르크대학 등 연구팀은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요 기업들이 저질 탄소 상쇄를 활용하는 탓에 VCM의 통합성이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많은 기업들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純)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 상쇄 배출권을 조달하기 위해 VCM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으로서는 자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보다는 외부에 아웃소싱함으로써 쉽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VCM에서 거래되는 상쇄 배출권의 품질이 떨어져 탄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위험성·시한·가격 등 기준에 따라 평가
연구팀은 2020~2023년 VCM에서 가장 많은 배출권을 소진(retirement)한 20개 기업이 사용한 상쇄의 특성과 품질을 조사했다. VCM 관련 자료는 베라(Verra’s Verified Carbon Standard, VCS), 유엔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 골드 스탠다드(GS) 등 가장 큰 등록기관 3곳에서 수집했다. 이들 3개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발행된 모든 자발적 탄소 상쇄의 85%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 측면에서 20개 기업의 상쇄에 대해 품질을 평가했다. 연구팀이 적용한 4가지 평가 기준은 ▶감축 프로젝트의 상대적 위험도 ▶프로젝트 및 배출권의 시한 ▶배출권의 가격 ▶프로젝트를 시행한 국가 등이다.
VCM에서 배출권을 많이 구매하는 대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상쇄 배출권을 구매하는지, 데이터를 수집해 속성을 공개한 경우는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평가 기준에서 상대적 위험도는 프로젝트에서 배출량 감축 효과를 부풀리거나 추가성을 과장할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추가성(additionality)은 프로젝트를 추가로 진행했을 때만 감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추가 프로젝트 없이도 어차피 진행될 감축 사업에서 나온 배출권은 추가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프로젝트와 배출권의 시한을 따지는 것은 기업이 배출권을 상쇄에 소진한 시점과 기업 지원으로 감축 활동이 진행된 시기가 일치하느냐 하는 점을 보는 것이다. 오랜 과거에 이미 진행된 프로젝트의 감축 실적에 바탕을 둔 배출권을 뒤늦게 확보하면 감축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배출권 가격을 보는 것은 평균적인 배출권 가격과 비교해 헐값에 나온 배출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값싼 배출권은 신용도가 낮은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대로 된 감축 프로젝트 실행까지 방해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가 시행된 곳이 어느 나라인지를 보는 것은 해당 저소득 국가의 기술 수준이나 국가 정책 시행에 비추어 감축 프로젝트가 꼭 필요한 요소였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4년 간 1억3400만톤 배출권 소진
분석 결과, 조사 대상 20개 회사는 모두 2020~2023년에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1억3400만톤의 상쇄 배출권을 구매, 소진했다. 이는 3개 VCM 기관에 등록된 전체 배출권의 5분의 1수준이었다.
20개 중 가장 큰 상쇄 배출권 구매자는 쉘과 델타항공으로 이 두 회사는 2020~2023년에 각각 CO2 2350만톤의 배출권를 소진했다.
20개 업체의 평균적인 소진량은 671만톤, 중간값은 384만톤이었다.
20개 기업별 2020~2023년 합계 탄소 상쇄 배출권 소진량 (단위는 100만톤CO2).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상쇄 배출권의 대부분은 개도국 산림보호(REDD+) 및 재생에너지(RE) 프로젝트에서 유래했다.
20개 기업이 구매한 상쇄 배출권 가운데 97% 이상은 회피 프로젝트에서 나왔고, 제거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은 2.3%에 불과했다.
상쇄 프로젝트는 회피(avoidance)와 제거(removal)라는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뉜다.
재생 에너지 또는 개선된 산림 보호와 같이 감축 활동을 하지 않았을 시나리오와 비교하여 감축활동을 이행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이 회피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배출권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회피 프로젝트에 포함된다.
20개 기업이 2020~2023년에 소진한 상쇄 배출권 가운데 회피와 제거 프로젝트의 비율. 대부분이 산림보호와 재생에너지 등 회피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이에 비해 자연 기반 또는 엔지니어링 기반 활동으로 대기 중의 CO2를 직접 포집하고 격리하는 경우를 제거 프로젝트로 분류한다.
전문가들은 회피보다는 제거가 제대로 된 기후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제거 기술은 미숙한 단계이고, 이를 통한 배출권 공급도 미미한 수준이다.
87%가 고위험 배출권…‘과대평가’ 우려
연구팀은 20개 기업이 구매한 배출권은 압도적으로 고위험 배출권이 많았다. 87%가 고위험 배출권으로 분류됐다. 추가성이 부족하거나 탄소 감축 효과를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위험 상쇄 배출권은 임업 및 토지 이용 프로젝트(주로 열대 우림을 보존하고 삼림 벌채를 방지하는 REDD+ 이니셔티브)와 15㎿(메가와트) 이상의 대규모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비롯된다.
소진된 배출권 가운데 저위험으로 분류된 것은 6%, 중위험으로 분류된 것도 6.7%에 불과했다.
REDD+ 프로젝트는 일단 고위험군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생각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REDD+ 프로젝트를 통한 배출량 상쇄는 대부분 명시된 감축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배출권을 과도하게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찌(Gucci) 같은 회사는 상쇄 배출권의 100%를 REDD+ 프로젝트에서 얻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높은 비중(상쇄 배출권의 36%)을 차지했는데, 이 역시 고위험 프로젝트로 분류된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규모가 클수록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상쇄 배출권 판매보다는 재생 전기 수익이 투자의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에 추가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배출권 65%는 10년 이상된 프로젝트에서 조달
기업들이 구매한 배출권의 시한 기준도 표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업들은 대부분의 배출권을 너무 오래된 프로젝트에서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진된 상쇄 배출권의 4분의 3(75%)이 유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관리하는 국제항공 탄소 상쇄 및 감축 제도(CORSIA)의 적격 규칙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RSIA에서 적격을 얻으려면 상쇄 배출권은 2015년 파리 협정이 체결된 다음인 2016년 이후에 배출권을 발행하기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파생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특정 프로젝트가 시작한 연도도 2016년 이후여야 한다.
전반적으로 20개 회사를 합치면 소진 배출권의 3분의 2(65%)가 10년 이상 된 프로젝트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경향은 쉘·델타항공 등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2013년 또는 그 이전에 시작된 프로젝트에서 배출권의 4분의 3 이상을 획득했다.
상쇄 배출권의 0.4%만이 최근인 2021년 이후 시작 연도의 프로젝트에서 나왔는데, 이는 20개 기업이 구매한 배출권이 품질 기준에 상당히 못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저렴한 배출권 구매 선호 '뚜렷'
연구팀은 “저품질 상쇄 배출권은 고품질 배출권보다 저렴하게 거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 번째 평가로 배출권 가격을 조사했다”며 “조사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저렴한 배출권 구매를 뚜렷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6개 회사는 평균 추정 가격이 낮은 순서로 40% 범위에 드는 배출권 프로젝트에서 다수의 배출권을 조달했다. 가격 분포에서 하위 40%에 드는 프로젝트의 배출권은 2020~2023년 동안 CO2 톤당 평균 0.98~5.89달러에 판매됐다.
반대로 4개 회사만이 가격이 높은 순서로 40% 범위에 드는 배출권을 다수 구매했다. 2020~2023년 사이 CO2톤당 5.15~15.6 달러에 판매됐다. 쉘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PetroChina)는 상위 40%에서 배출권의 80%와 98%를 조달했다.
연구팀은 “기업들은 임업 및 토지 이용에서 나오는 오래된 배출권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이는 기업들이 톤당 배출권 비용을 낮추는 잘 알려진 전략을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을 줄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의미다.
브라질·중국 사업 추가성에 의문 제기돼
VCM 등록기관 가운데 GS와 VCS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추가성을 입증하기 위해 재생 전기 프로젝트의 경우 최빈개발도상국(LDC)에서 수행돼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GS는 저소득 국가(LIC) 또는 중하위소득 국가(LMIC)에서는 거의 보급이 안 된 기술(보급률이 5% 미만인)을 보급하는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20개 기업이 확보한 재생 에너지 배출권 중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LDC에서 시행된 프로젝트에서는 총 10만6000톤의 배출권이 나왔지만, 이 가운데 모리타니와 우간다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만 조건을 충족했다.
20개 기업이 소진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은 26개국에서 공급됐지만, 대부분인 84%는 브라질·중국·인도 세 나라에서 나왔다.
브라질과 중국의 경우 중상위 소득 수준에 도달한 후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해당 기술의 침투율이 5%를 초과했기 때문에 추가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더욱이 브라질과 중국은 수력발전에서 유래한 상쇄 배출권 총 447만톤을 이들 기업에 제공했다. 수력 발전은 오랫동안 각국에서 주류 기술이고 일반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추가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배출권 9%는 요건 하나도 충족 못해
연구팀은 앞서 4가지 항목으로 기업들이 소진한 상쇄 배출권의 속성을 분석한 데 이어 4개 지표별로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종합 평가했다.
우선 비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위험성, 시한, 가격 등 3개 지표별로 각각 1점을 부여했다. 3가지 지표가 모두 충족되면 비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은 3점의 점수를 받는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 지표에 1점을 추가로 부여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우 4가지 지표를 모두 충족하면 총 4점을 얻게 된다.
평가 결과, 대부분 기업의 점수는 0~2 사이에 집중됐다.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경우 모든 회사를 합친 평균 가중 점수는 1.03점이었다. 배출권의 9%는 세 가지 지표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79%는 하나만 충족했다. 노르웨이 크루즈라인(Norwegian CL)과 텔스타(Telstra)의 경우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99% 이상이 0점을 받았다.
20개 기업이 상쇄 배출권을 획득한 프로젝트의 기후 기여 점수. 비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회색)은 3점이 만점이고,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노란색)는 4점이 만점이다. 대부분 1점 안팎이다. 4가지 지표(요건) 중에 1가지만 충족한다는 의미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재생 에너지 배출권에 대해 4가지 지표를 분석하면 모든 회사의 평균 점수는 0.81였다. 이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이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보다 품질이 더 낮음을 나타낸다. 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약 절반(48%)이 4가지 지표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24%는 하나만 충족했다.
원칙·지침은 충분해도 실행 안 하는 게 문제
연구팀은 “시장을 '정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VCM이 만성적인 품질 문제와 나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원칙, 권장 사항, 규칙 변경 및 공약의 형태로 지침이 충분히 마련됐지만, 현실에서는 잘 채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VCM의 3대 등록기관의 등록부에서 배출권의 20% 이상을 소진하는, 가장 큰 배출권 구매자인 이들 기업은 여전히 품질이 낮고 저렴한 배출권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감독 및 규제에서 벗어나 운영되는 VCM이지만, 기업들의 비협조로 글로벌 배출량 감소 효과가 훼손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시각이다.
연구팀은 “조사한 20개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VCM에 등록되는 상쇄 배출권의 효과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환경적 성과를 과장한다면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중에서도 회피 프로젝트가 아닌 제거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배출권 위주로 재편돼야 하고, 이를 위해 탄소 제거에 훨씬 더 큰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상쇄 배출권 구매 많은
쉘·델타항공·보잉 등 세계 각국 20개 대기업
4년치 배출권 실제 탄소감축 효과 상세 평가
기후기여 3가지 요건 중에서 한 가지만 충족
감축 효과 부풀리고, ‘추가성’도 과장된 상태
교토대 연구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논문
아프리카 케냐의 혼게라 재조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캐냐 쿠투스 지역의 두 학생이 학교에서 묘목을 심고 있다. [자료: DGB Group]
셸·세브론·델타항공·보잉 등 세계적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탄소 상쇄(offset)를 적극 활용하지만, 탄소 감축 효과가 실제보다 크게 과장됐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기업들은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에서 배출권을 구입, 자신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지만, 값싸고 질 낮은 배출권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VCM은 2022년 기준으로 약 20억 달러(약 2조6600억 원) 규모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기업들의 탄소 배출권 수요가 증가하면서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
일본 교토대학과 독일 함부르크대학 등 연구팀은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요 기업들이 저질 탄소 상쇄를 활용하는 탓에 VCM의 통합성이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많은 기업들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純)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 상쇄 배출권을 조달하기 위해 VCM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으로서는 자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보다는 외부에 아웃소싱함으로써 쉽게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VCM에서 거래되는 상쇄 배출권의 품질이 떨어져 탄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위험성·시한·가격 등 기준에 따라 평가
연구팀은 2020~2023년 VCM에서 가장 많은 배출권을 소진(retirement)한 20개 기업이 사용한 상쇄의 특성과 품질을 조사했다. VCM 관련 자료는 베라(Verra’s Verified Carbon Standard, VCS), 유엔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 골드 스탠다드(GS) 등 가장 큰 등록기관 3곳에서 수집했다. 이들 3개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발행된 모든 자발적 탄소 상쇄의 85%를 차지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 측면에서 20개 기업의 상쇄에 대해 품질을 평가했다. 연구팀이 적용한 4가지 평가 기준은 ▶감축 프로젝트의 상대적 위험도 ▶프로젝트 및 배출권의 시한 ▶배출권의 가격 ▶프로젝트를 시행한 국가 등이다.
VCM에서 배출권을 많이 구매하는 대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상쇄 배출권을 구매하는지, 데이터를 수집해 속성을 공개한 경우는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평가 기준에서 상대적 위험도는 프로젝트에서 배출량 감축 효과를 부풀리거나 추가성을 과장할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추가성(additionality)은 프로젝트를 추가로 진행했을 때만 감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추가 프로젝트 없이도 어차피 진행될 감축 사업에서 나온 배출권은 추가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프로젝트와 배출권의 시한을 따지는 것은 기업이 배출권을 상쇄에 소진한 시점과 기업 지원으로 감축 활동이 진행된 시기가 일치하느냐 하는 점을 보는 것이다. 오랜 과거에 이미 진행된 프로젝트의 감축 실적에 바탕을 둔 배출권을 뒤늦게 확보하면 감축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배출권 가격을 보는 것은 평균적인 배출권 가격과 비교해 헐값에 나온 배출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값싼 배출권은 신용도가 낮은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대로 된 감축 프로젝트 실행까지 방해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가 시행된 곳이 어느 나라인지를 보는 것은 해당 저소득 국가의 기술 수준이나 국가 정책 시행에 비추어 감축 프로젝트가 꼭 필요한 요소였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4년 간 1억3400만톤 배출권 소진
분석 결과, 조사 대상 20개 회사는 모두 2020~2023년에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1억3400만톤의 상쇄 배출권을 구매, 소진했다. 이는 3개 VCM 기관에 등록된 전체 배출권의 5분의 1수준이었다.
20개 중 가장 큰 상쇄 배출권 구매자는 쉘과 델타항공으로 이 두 회사는 2020~2023년에 각각 CO2 2350만톤의 배출권를 소진했다.
20개 업체의 평균적인 소진량은 671만톤, 중간값은 384만톤이었다.
20개 기업별 2020~2023년 합계 탄소 상쇄 배출권 소진량 (단위는 100만톤CO2).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상쇄 배출권의 대부분은 개도국 산림보호(REDD+) 및 재생에너지(RE) 프로젝트에서 유래했다.
20개 기업이 구매한 상쇄 배출권 가운데 97% 이상은 회피 프로젝트에서 나왔고, 제거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은 2.3%에 불과했다.
상쇄 프로젝트는 회피(avoidance)와 제거(removal)라는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뉜다.
재생 에너지 또는 개선된 산림 보호와 같이 감축 활동을 하지 않았을 시나리오와 비교하여 감축활동을 이행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이 회피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배출권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회피 프로젝트에 포함된다.
20개 기업이 2020~2023년에 소진한 상쇄 배출권 가운데 회피와 제거 프로젝트의 비율. 대부분이 산림보호와 재생에너지 등 회피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이에 비해 자연 기반 또는 엔지니어링 기반 활동으로 대기 중의 CO2를 직접 포집하고 격리하는 경우를 제거 프로젝트로 분류한다.
전문가들은 회피보다는 제거가 제대로 된 기후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제거 기술은 미숙한 단계이고, 이를 통한 배출권 공급도 미미한 수준이다.
87%가 고위험 배출권…‘과대평가’ 우려
연구팀은 20개 기업이 구매한 배출권은 압도적으로 고위험 배출권이 많았다. 87%가 고위험 배출권으로 분류됐다. 추가성이 부족하거나 탄소 감축 효과를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위험 상쇄 배출권은 임업 및 토지 이용 프로젝트(주로 열대 우림을 보존하고 삼림 벌채를 방지하는 REDD+ 이니셔티브)와 15㎿(메가와트) 이상의 대규모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비롯된다.
소진된 배출권 가운데 저위험으로 분류된 것은 6%, 중위험으로 분류된 것도 6.7%에 불과했다.
REDD+ 프로젝트는 일단 고위험군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생각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REDD+ 프로젝트를 통한 배출량 상쇄는 대부분 명시된 감축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배출권을 과도하게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찌(Gucci) 같은 회사는 상쇄 배출권의 100%를 REDD+ 프로젝트에서 얻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높은 비중(상쇄 배출권의 36%)을 차지했는데, 이 역시 고위험 프로젝트로 분류된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규모가 클수록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상쇄 배출권 판매보다는 재생 전기 수익이 투자의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에 추가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배출권 65%는 10년 이상된 프로젝트에서 조달
기업들이 구매한 배출권의 시한 기준도 표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업들은 대부분의 배출권을 너무 오래된 프로젝트에서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진된 상쇄 배출권의 4분의 3(75%)이 유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관리하는 국제항공 탄소 상쇄 및 감축 제도(CORSIA)의 적격 규칙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RSIA에서 적격을 얻으려면 상쇄 배출권은 2015년 파리 협정이 체결된 다음인 2016년 이후에 배출권을 발행하기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파생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특정 프로젝트가 시작한 연도도 2016년 이후여야 한다.
전반적으로 20개 회사를 합치면 소진 배출권의 3분의 2(65%)가 10년 이상 된 프로젝트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경향은 쉘·델타항공 등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2013년 또는 그 이전에 시작된 프로젝트에서 배출권의 4분의 3 이상을 획득했다.
상쇄 배출권의 0.4%만이 최근인 2021년 이후 시작 연도의 프로젝트에서 나왔는데, 이는 20개 기업이 구매한 배출권이 품질 기준에 상당히 못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저렴한 배출권 구매 선호 '뚜렷'
연구팀은 “저품질 상쇄 배출권은 고품질 배출권보다 저렴하게 거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 번째 평가로 배출권 가격을 조사했다”며 “조사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저렴한 배출권 구매를 뚜렷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6개 회사는 평균 추정 가격이 낮은 순서로 40% 범위에 드는 배출권 프로젝트에서 다수의 배출권을 조달했다. 가격 분포에서 하위 40%에 드는 프로젝트의 배출권은 2020~2023년 동안 CO2 톤당 평균 0.98~5.89달러에 판매됐다.
반대로 4개 회사만이 가격이 높은 순서로 40% 범위에 드는 배출권을 다수 구매했다. 2020~2023년 사이 CO2톤당 5.15~15.6 달러에 판매됐다. 쉘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PetroChina)는 상위 40%에서 배출권의 80%와 98%를 조달했다.
연구팀은 “기업들은 임업 및 토지 이용에서 나오는 오래된 배출권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이는 기업들이 톤당 배출권 비용을 낮추는 잘 알려진 전략을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을 줄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의미다.
브라질·중국 사업 추가성에 의문 제기돼
VCM 등록기관 가운데 GS와 VCS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추가성을 입증하기 위해 재생 전기 프로젝트의 경우 최빈개발도상국(LDC)에서 수행돼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GS는 저소득 국가(LIC) 또는 중하위소득 국가(LMIC)에서는 거의 보급이 안 된 기술(보급률이 5% 미만인)을 보급하는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20개 기업이 확보한 재생 에너지 배출권 중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LDC에서 시행된 프로젝트에서는 총 10만6000톤의 배출권이 나왔지만, 이 가운데 모리타니와 우간다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만 조건을 충족했다.
20개 기업이 소진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은 26개국에서 공급됐지만, 대부분인 84%는 브라질·중국·인도 세 나라에서 나왔다.
브라질과 중국의 경우 중상위 소득 수준에 도달한 후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해당 기술의 침투율이 5%를 초과했기 때문에 추가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더욱이 브라질과 중국은 수력발전에서 유래한 상쇄 배출권 총 447만톤을 이들 기업에 제공했다. 수력 발전은 오랫동안 각국에서 주류 기술이고 일반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추가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배출권 9%는 요건 하나도 충족 못해
연구팀은 앞서 4가지 항목으로 기업들이 소진한 상쇄 배출권의 속성을 분석한 데 이어 4개 지표별로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종합 평가했다.
우선 비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위험성, 시한, 가격 등 3개 지표별로 각각 1점을 부여했다. 3가지 지표가 모두 충족되면 비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은 3점의 점수를 받는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 지표에 1점을 추가로 부여했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우 4가지 지표를 모두 충족하면 총 4점을 얻게 된다.
평가 결과, 대부분 기업의 점수는 0~2 사이에 집중됐다.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경우 모든 회사를 합친 평균 가중 점수는 1.03점이었다. 배출권의 9%는 세 가지 지표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79%는 하나만 충족했다. 노르웨이 크루즈라인(Norwegian CL)과 텔스타(Telstra)의 경우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99% 이상이 0점을 받았다.
20개 기업이 상쇄 배출권을 획득한 프로젝트의 기후 기여 점수. 비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회색)은 3점이 만점이고,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노란색)는 4점이 만점이다. 대부분 1점 안팎이다. 4가지 지표(요건) 중에 1가지만 충족한다는 의미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
재생 에너지 배출권에 대해 4가지 지표를 분석하면 모든 회사의 평균 점수는 0.81였다. 이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배출권이 비재생 에너지 배출권보다 품질이 더 낮음을 나타낸다. 재생 에너지 배출권의 약 절반(48%)이 4가지 지표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했고, 24%는 하나만 충족했다.
원칙·지침은 충분해도 실행 안 하는 게 문제
연구팀은 “시장을 '정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VCM이 만성적인 품질 문제와 나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원칙, 권장 사항, 규칙 변경 및 공약의 형태로 지침이 충분히 마련됐지만, 현실에서는 잘 채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VCM의 3대 등록기관의 등록부에서 배출권의 20% 이상을 소진하는, 가장 큰 배출권 구매자인 이들 기업은 여전히 품질이 낮고 저렴한 배출권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감독 및 규제에서 벗어나 운영되는 VCM이지만, 기업들의 비협조로 글로벌 배출량 감소 효과가 훼손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시각이다.
연구팀은 “조사한 20개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VCM에 등록되는 상쇄 배출권의 효과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환경적 성과를 과장한다면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중에서도 회피 프로젝트가 아닌 제거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배출권 위주로 재편돼야 하고, 이를 위해 탄소 제거에 훨씬 더 큰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