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대상포진 백신, ‘약물 재창출’의 새로운 가능성...“치매 치료의 속도를 높일 현실적 대안”

이미 검증된 약으로 치매에 도전한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2050년이면 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신약이 아니라 이미 다른 질환 치료에 쓰이고 있는 약물을 치매 치료제로 활용하는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교의 앤 코벳(Anne Corbett)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 연구 치료(Alzheimer’s Research & Therap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와 예방에 가장 유망한 기존 약물 3가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을 활용하면 치매 치료제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합의로 좁혀진 세 가지 후보
이번 연구는 이른바 ‘델파이(Delphi) 합의 연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학계·임상·산업계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익명 설문과 체계적 검토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고도의 의사결정 방법이다. 연구팀은 약 80여 개의 후보 약물 가운데 신경 보호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세 가지를 최종 선정했다.
① 비아그라(실데나필): 혈류 개선에서 신경 보호까지
가장 눈길을 끄는 후보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실데나필(비아그라)이다. 연구에 따르면 실데나필은 뇌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타우 단백질 변성을 줄이며, 뇌 혈류를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기전을 통해 뇌를 보호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동물 실험에서는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비교적 일관되게 관찰됐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기존 임상·관찰 연구 결과는 아직 엇갈린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대규모 임상 2b상과 3상 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상 2b상은 적정 용량과 초기 치료 효과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단계이며, 임상 3상은 수백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최종 확인해 시판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절차다.
② 대상포진 백신: 치매 위험을 낮추는 ‘집단 효과’
두 번째 후보는 대상포진 백신(조스타박스)이다. 연구진은 약 94만 명을 분석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근거로,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가 비접종자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약 16~20%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효과는 백신이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막는 동시에, 만성 염증과 관련된 면역 반응을 조절해 뇌 신경 퇴행을 억제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개인 치료제라기보다는 인구 전체의 치매 발생률을 낮출 수 있는 공중보건적 수단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③ 릴루졸: 루게릭병 치료제의 또 다른 가능성
마지막 후보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치료제로 사용돼 온 릴루졸(Riluzole)이다. 릴루졸은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과도한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조절해 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미 소규모 임상 시험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대사 기능 저하를 늦추는 긍정적 신호가 관찰됐으며, 연구진은 실데나필과 마찬가지로 향후 대규모 임상을 통해 효과를 명확히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약물 재창출, 왜 주목받나
약물 재창출은 신약 개발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이점을 가진다.
첫째, 안전성 프로필이 이미 확립돼 있어 추가적인 독성·비임상 시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둘째,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어 치료제가 환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셋째,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신약 개발과 달리, 대학·공공 연구기관·자선 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넷째, 원격 또는 하이브리드 임상시험 등 효율적인 연구 설계가 가능해 여러 후보 약물을 동시에 검증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앤 코벳 교수는 “약물 재창출은 이미 검증된 약을 활용해 치료제 개발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연구가 새로운 치매 치료법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수십 년째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익숙한 약물들의 ‘두 번째 인생’이 알츠하이머병 대응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아그라·대상포진 백신, ‘약물 재창출’의 새로운 가능성...“치매 치료의 속도를 높일 현실적 대안”
이미 검증된 약으로 치매에 도전한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2050년이면 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신약이 아니라 이미 다른 질환 치료에 쓰이고 있는 약물을 치매 치료제로 활용하는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교의 앤 코벳(Anne Corbett)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 연구 치료(Alzheimer’s Research & Therap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와 예방에 가장 유망한 기존 약물 3가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을 활용하면 치매 치료제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합의로 좁혀진 세 가지 후보
이번 연구는 이른바 ‘델파이(Delphi) 합의 연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학계·임상·산업계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익명 설문과 체계적 검토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고도의 의사결정 방법이다. 연구팀은 약 80여 개의 후보 약물 가운데 신경 보호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세 가지를 최종 선정했다.
① 비아그라(실데나필): 혈류 개선에서 신경 보호까지
가장 눈길을 끄는 후보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실데나필(비아그라)이다. 연구에 따르면 실데나필은 뇌 신경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타우 단백질 변성을 줄이며, 뇌 혈류를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기전을 통해 뇌를 보호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동물 실험에서는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비교적 일관되게 관찰됐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기존 임상·관찰 연구 결과는 아직 엇갈린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대규모 임상 2b상과 3상 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상 2b상은 적정 용량과 초기 치료 효과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단계이며, 임상 3상은 수백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최종 확인해 시판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절차다.
② 대상포진 백신: 치매 위험을 낮추는 ‘집단 효과’
두 번째 후보는 대상포진 백신(조스타박스)이다. 연구진은 약 94만 명을 분석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근거로,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가 비접종자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약 16~20%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효과는 백신이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막는 동시에, 만성 염증과 관련된 면역 반응을 조절해 뇌 신경 퇴행을 억제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개인 치료제라기보다는 인구 전체의 치매 발생률을 낮출 수 있는 공중보건적 수단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③ 릴루졸: 루게릭병 치료제의 또 다른 가능성
마지막 후보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치료제로 사용돼 온 릴루졸(Riluzole)이다. 릴루졸은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과도한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조절해 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미 소규모 임상 시험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대사 기능 저하를 늦추는 긍정적 신호가 관찰됐으며, 연구진은 실데나필과 마찬가지로 향후 대규모 임상을 통해 효과를 명확히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약물 재창출, 왜 주목받나
약물 재창출은 신약 개발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이점을 가진다.
첫째, 안전성 프로필이 이미 확립돼 있어 추가적인 독성·비임상 시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둘째,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어 치료제가 환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셋째,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신약 개발과 달리, 대학·공공 연구기관·자선 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넷째, 원격 또는 하이브리드 임상시험 등 효율적인 연구 설계가 가능해 여러 후보 약물을 동시에 검증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앤 코벳 교수는 “약물 재창출은 이미 검증된 약을 활용해 치료제 개발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연구가 새로운 치매 치료법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수십 년째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익숙한 약물들의 ‘두 번째 인생’이 알츠하이머병 대응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