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반향정위를 이용해 사물의 거리를 측정하는 모습을 상상한 이미지. (이미지=챗GPT)
박쥐나 돌고래가 어둠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날고 헤엄칠 수 있는 비결은 ‘반향정위(反響定位, echolocation)’다. 소리를 내고, 되돌아오는 반사음을 분석해 주변 공간과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발표된 한 뇌과학·심리학 연구는 이 질문에 “조건부로 그렇다”는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 심리학과의 앤드루 J. 콜라릭(Andrew J. Kolarik)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실험 뇌 연구 (Experimental Brain Research)'에 “사람도 스스로 만든 소리의 반향을 이용해 물체의 거리를 판단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시각과 청각에 이상이 없는 대학생 11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눈을 가린 상태에서, 입으로 ‘딱’ 하는 클릭 소리를 내도록 지시받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향을 듣고, 앞에 있는 물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맞히도록 했다. 물체는 소리를 잘 반사하는 알루미늄 판과 소리를 흡수하는 폼(foam) 판 두 종류였고, 거리는 30cm, 60cm, 90cm로 설정했다.
결과는 의외로 분명했다. 참가자들은 약간의 연습만으로도, 소리를 내지 않는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있다면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를 꽤 높은 정확도로 판단해냈다. 즉, 사람도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고 그 반향을 활용하면, 제한적이지만 반향정위와 유사한 공간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사람의 반향정위는 박쥐처럼 자동적이고 정밀한 감각이 아니다.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실제 거리보다 물체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는데, 특히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런 오차가 커졌다. 연구진은 이를 ‘청각 거리 지각의 압축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소리의 크기나 음색 같은 단서가 멀어질수록 둔감해지기 때문에, 뇌가 거리를 충분히 늘려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물체의 재질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알루미늄처럼 소리를 잘 반사하는 물체는 거리 판단이 더 정확하고 일관됐지만, 폼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물체는 훨씬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는 반향정위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환경 조건에 크게 좌우되는 감각 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훈련의 필요성이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반향정위를 처음 경험했지만, 실험 전 짧은 연습과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나 장기간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훨씬 더 먼 거리와 다양한 물체를 구별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반향정위는 타고난 초능력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기술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연구진은 시각장애인의 이동 훈련과 공간 인식 보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일부 시각장애인은 이미 입 클릭이나 지팡이 소리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 연구는 감각 대체 기술, 예를 들어 소리나 진동으로 공간 정보를 전달하는 보조기기 개발에도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가 새로운 감각 정보를 어떻게 학습하고 ‘공간 지도’를 재구성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준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박쥐처럼 정교한 반향정위 능력을 자연스럽게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조건이 갖춰지고, 의도적으로 소리를 사용하며, 일정한 훈련을 거친다면, 인간 역시 반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또 하나의 인간적 가능성이, 과학의 언어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박쥐나 돌고래가 어둠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날고 헤엄칠 수 있는 비결은 ‘반향정위(反響定位, echolocation)’다. 소리를 내고, 되돌아오는 반사음을 분석해 주변 공간과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발표된 한 뇌과학·심리학 연구는 이 질문에 “조건부로 그렇다”는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 심리학과의 앤드루 J. 콜라릭(Andrew J. Kolarik)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실험 뇌 연구 (Experimental Brain Research)'에 “사람도 스스로 만든 소리의 반향을 이용해 물체의 거리를 판단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시각과 청각에 이상이 없는 대학생 11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눈을 가린 상태에서, 입으로 ‘딱’ 하는 클릭 소리를 내도록 지시받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향을 듣고, 앞에 있는 물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맞히도록 했다. 물체는 소리를 잘 반사하는 알루미늄 판과 소리를 흡수하는 폼(foam) 판 두 종류였고, 거리는 30cm, 60cm, 90cm로 설정했다.
결과는 의외로 분명했다. 참가자들은 약간의 연습만으로도, 소리를 내지 않는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있다면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를 꽤 높은 정확도로 판단해냈다. 즉, 사람도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고 그 반향을 활용하면, 제한적이지만 반향정위와 유사한 공간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사람의 반향정위는 박쥐처럼 자동적이고 정밀한 감각이 아니다.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실제 거리보다 물체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는데, 특히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런 오차가 커졌다. 연구진은 이를 ‘청각 거리 지각의 압축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소리의 크기나 음색 같은 단서가 멀어질수록 둔감해지기 때문에, 뇌가 거리를 충분히 늘려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물체의 재질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알루미늄처럼 소리를 잘 반사하는 물체는 거리 판단이 더 정확하고 일관됐지만, 폼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물체는 훨씬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는 반향정위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환경 조건에 크게 좌우되는 감각 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훈련의 필요성이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반향정위를 처음 경험했지만, 실험 전 짧은 연습과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나 장기간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훨씬 더 먼 거리와 다양한 물체를 구별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반향정위는 타고난 초능력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기술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연구진은 시각장애인의 이동 훈련과 공간 인식 보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일부 시각장애인은 이미 입 클릭이나 지팡이 소리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 연구는 감각 대체 기술, 예를 들어 소리나 진동으로 공간 정보를 전달하는 보조기기 개발에도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가 새로운 감각 정보를 어떻게 학습하고 ‘공간 지도’를 재구성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준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박쥐처럼 정교한 반향정위 능력을 자연스럽게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조건이 갖춰지고, 의도적으로 소리를 사용하며, 일정한 훈련을 거친다면, 인간 역시 반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또 하나의 인간적 가능성이, 과학의 언어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