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식량 ‘일석이조’…영농형 태양광 잠재력 확인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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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만㎢에서 연간 338 TWh 생산 가능
태양광 발전에 좋은 곳 농업생산력도 높아
농업생산 줄어도 전력 판매로 소득은 늘어
국내 2038년 재생에너지 절반 채울 수도
국내 도입하려면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영국은 골프장 면적이 태양광 시설의 6배
한국은 국토 면적 중 골프장 비율 세계 2위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모습; 오스트리아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 사례.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모습; 오스트리아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 사례.

농업 생산을 크게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의 잠재력이 영국에서 확인됐다.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Agro-photovoltaics, APV)을 대규모로 설치해서 농업과 전력 생산을 병행한다면 기후변화 위기 해결과 식량안보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영국 셰필드 대학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응용 에너지(Applied Ener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영국의 농경지 가운데 2만㎢의 우량 농지에 APV를 도입한다면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연간 338 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1TWh는 100만 메가와트시(MWh), 혹은 1000기가와트시(GWh)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내 총 농지 22만8948㎢를 대상으로 APV 잠재력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APV 도입 후보지로 꼽은 우량 농지 2만㎢는 한국의 전체 농경지 면적 1만5000여 ㎢보다도 크다.

농지 2만㎢에서 생산될 338 TWh는 영국 정부가 2030년까지 도입하기로 한 전체 태양광발전(PV) 용량 목표의 약 6.8배에 이른다. 한국의 올해 전체 전력 수요 예측치 550 TWh와 비교하면 60%가 넘는 규모다.

아울러, 연구팀은 영국 전체 22만8948㎢ 농경지에서 APV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이 이론적으로 연간 2118 TWh에 이른다고 계산했다. 이는 영국의 2035년 예상 전기 수요의 4배 이상이다.

연구팀은 이를 계산할 때 태양광 발전 용량 1MW당 약 0.02㎢의 설치 면적이 필요하고, 1MW당 연간 1GWh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보수적 추정을 적용했고, 농업 생산을 위해 영농형 태양광 발전량을 3분의 1로 줄이는 것을 가정했으며, 각 농경지의 태양광 발전 적합도 등급을 고려했다.

영국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 잠재력 [자료: Applied Energy, 2025]

영국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 잠재력 [자료: Applied Energy, 2025]


영국 농지 겸용 않으면 662㎢ 추가 토지 필요

논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넷제로’ 목표를 설정했고,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78% 줄이는 중간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태양광발전(P과 풍력에너지는 2035년 전력의 75~90%를 공급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PV의 최대 출력 용량을 16.9GW(기가와트)에서 50GW로 세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이같은 인프라를 개발하려면 최대 662㎢(서울시 면적 605㎢보다 넓음)의 추가 토지가 필요하고, 농지를 대규모 PV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반면, 영국은 식량 생산에서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노동력 손실과 공급망 중단으로 인해 브렉시트 이후 식량 사정은 더 불안정해졌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정치적 긴장으로 인한 가격 불안정성과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은 농업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량안보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PV와 농업은 비슷한 토지 요구 사항(풍부한 햇빛과 비교적 평평한 땅)을 갖고 있어서 PV에 가장 적합한 토지는 농업 생산성도 높은 곳”이라면서 “식량과 전력을 모두 제공하는 다기능 토지 이용 혁신이 시급하다”며 APV에 대한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수직 양면형 패널을 바탕으로 한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 (독일 사례).

수직 양면형 패널을 바탕으로 한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 (독일 사례).


다양한 기술 적용하면 농사에도 유리

연구팀은 기존 연구를 통해 APV는 이미 기술적으로 잠재력이 확인됐음을 제시했다. APV는 농경지나 가축 방목지 위해 농기계나 가축이 왕래할 수 있게 높게 패널을 설치하는 구조가 기본이다. 패널은 고정형이나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추적형이 설치된다.

경작지 주변에 혹은 경작지 내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 양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면 아침저녁 옆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발전할 수 있다. 다른 PV가 한낮에 전력 생산이 집중된다는 면에서 상호보완도 가능하다.

농사에 덜 지장을 주기 위해 반투명 패널이나 태양광 파장을 흡수해 발전하는 파장 선택형 패널도 연구되고 있다.

APV 패널은 그늘을 만들어 작물과 토양으로부터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 수자원 수요를 줄일 수 있고, 패널 자체가 빗물을 모아들이는 역할을 하면 물을 저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방목 가축들은 패널 그늘에서 여름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도 있고, 일부 작물도 더위나 강한 햇빛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수직 양면형 패널은 약간의 바람막이 역할도 할 수 있고, 폭우나 우박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할 수도 있다.

전남 농업기술원의 영농형 태양광 실험 시설, [자료; Agronomics, 2021]

전남 농업기술원의 영농형 태양광 실험 시설, [자료; Agronomics, 2021]


농업과 전력 두 가지 고려하면 수익 커져

영국의 농업과 농민을 대표하는 주요 조직인 전국농민연합(National Farmers’ Union, NFU)도 이러한 ‘다기능 토지 사용’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APV가 농민에게 소득 다각화 등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 농업의 경제적 수익이 심한 변동을 보이는 데 비해 전기 판매는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실제로 농업 작물 생산과 전력 생산 두 가지를 모두 생각하면 농가 소득 증대에는 도움이 된다. 전남 농업기술원 연구팀이 농경지에서 옥수수나 대두 등의 작물을 재배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지난 2021년 ‘농학(Agronomy)’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연구팀은 기존 작물 생산을 감소시키지 않고도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높이는 효율적인 APV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옥수수의 경우 그림자 비율이 21.3%인 양면 태양광 모듈이 가장 수익성 있는 영농형 태양광 유형으로 꼽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부의 목장.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 풀을 뜯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부의 목장.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 풀을 뜯고 있다.


토지 전용 갈등, 시각적 피해도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본질적으로 농업 생산량 감소는 피하기 어렵다. 2022년 ‘농학(Agronomy)’ 저널에 논문을 발표한 순천대 국용인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그림자 비율이 30% 안팎인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에서 재배된 참깨 작물은 대조구의 작물에 비해 줄기 길이, 유효 분지 수, 1000개 종자 중량이 줄었고 수확량은 19%가 줄었다.

콩 작물은 꼬투리당 미성숙 낟알 비율이 증가하고 대조구에 비해 수확량이 18~20% 감소했다. 벼 작물은 줄기당 이삭 수, 이삭당 낟알 수, 1000 낟알의 무게가 더 낮았으며, 대조구와 비교했을 때 수확량이 13~30% 감소하였다.

APV는 농경지의 손실은 피할 수 없고, 토지 사용을 둘러싼 갈등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APV 시설 설치로 인한 시각적 영향이나 농촌 풍경을 해치는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다. 지형과 삼림 생태계 등 주변 특징에 따라 APV의 규모나 형태를 달리할 필요도 있다.

반대로 태양광 패널을 농경지에 설치할 경우 영농 활동에서 발생하는 먼지 오염 등으로 인해 패널의 부식이 증가할 수도 있다.

넓게 퍼져있는 농경지에 전력 송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나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설치하는 것과 관련해 기술적·경제적 타당성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영국 연구팀은 “영국의 긴급한 토지 이용 문제와 식량 및 에너지 안보 필요성을 고려할 때, APV 기술을 적용하면 정부의 여러 정책 목표에 기여하는 동시에 목표 간의 상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영농형 태양광 발전 시설 사례. [자료: Agronomics, 2023]

국내 영농형 태양광 발전 시설 사례. [자료: Agronomics, 2023]


국내  농지 10% 적용하면 70GW 설치 가능

국내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등을 중심으로 APV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농림부는 여전히 식량안보에 중점을 두고 있어 농업진흥지역(전체 농지의 44%)이 아닌 비(非)우량농지에만 APV를 허용하려는 게 정부 공식 입장이다.

여기에 APV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농지법 개정 등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APV 사업 주체를 자경농으로 한정할 것이냐, 임차농까지 확대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APV 사업기간, 즉 농지의 타용도 임시 사용허가 기간도 현행 8년에서 20년까지 허용할 것이냐도 쟁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농업진흥지역 외 농지 10%에 영농형 태양광을 보급한다면 약 30GW 규모의 시설을 보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용 태양광 보급현황(잠정)에 대해 신규 설치 용량 3.16GW를 기록했으며, 사업용 태양광 누적 보급 용량은 27.1GW에 이른다.

이에 비해 태양광 발전 용량 1MW를 설치하는 데 약 0.02㎢의 농경지가 필요하다는 영국 연구팀의 분석 방법을 적용한다면, 국내 농지 전체 1만5000㎢에는 750GW 규모의 APV 패널 설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이와 관련,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도 지난해 국내 농지 1만5760㎢에서 682GW 규모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연구팀의 분석처럼 우량 농지를 포함해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전국 농경지의 10%(1500㎢)에 APV 패널을 설치한다고 했을 때 약 70GW 규모의 설치가 가능하고, 이는 지금까지 설치된 사업용 태양광 발전시설의 2.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23년 30GW인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을 2030년 78GW, 2038년 121.9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APV만으로 2038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의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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