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충돌’ 리스크 ESG보고서에는 없었다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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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와 지방공항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2008~2018년 보고서엔 예방 활동 소개
2019년 이후엔 관련 내용 완전히 빠져
반복 상황에 익숙해진 ‘안전 불감증’ 방증
제주항공 보고서 ‘항공기 정비’ 내용 부실
재발 막으려면 사고원인 제대로 규명해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8일째인 5일 비가 내리는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과 꼬리 날개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한국공항공사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 ‘조류 충돌’에 관한 내용이 2019년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반복되는 조류 충돌이 익숙해지면서 조직 전체가 조류 충돌 위험에 둔감해졌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남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제주항공 참사가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1차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공항공사가 발간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는 조류 충돌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김포공항과 13개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의 ESG 경영의 내용과 성과를 담고 있다.



2015년에는 예방 활동 관련 그래픽도 담아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조류 충돌을 애초부터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보고서 29쪽에는 “비행장 분야에서 외국항공사에 대한 조류충돌 위험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2008년 8월에 외국항공사에 대한 위험평가 근거를 마련하고 외국 항공사에 조류 충돌 보고를 제출하도록 조치를 완료하였습니다.”라고 조류충돌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의 201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조류 충돌 예방 활동을 설명한 그래픽.

2015년 보고서 30쪽을 보면 ‘선진 조류충돌 관리기법 도입을 통한 조류충돌건수 17% 감소’라는 작은 제목 아래에 “김포, 김해, 제주공항 등 운항 빈도가 높은 핵심 3개 공항에 대해 조류생태환경 연구조사 및 선진 조류충돌 관리기법 개발을 위한 사계절 조류생태환경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현장조사 및 분석, 해외 선진사례 파악을 통한 과학적 관리기법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 조류충돌 건수가 2013년 48건에서 2014년 40건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조류 충돌 예방 활동과 관련된 그래픽도 담았다.
2018년 보고서는 37쪽에서 조류 충돌을 다뤘지만,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다. ‘항공기 운항 안전성 증대’라는 소제목 아래에 “공사는 조류, 장애물 등 잠재적 항공안전 위협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여 항공기 안전운항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항별 환경에 최적화된 조류 퇴치 강화 대책을 시행하여 조류 충돌 건수가 2016년 55건에서 2017년 47건으로 14.5% 감소했습니다.”라고만 언급했다.

폭설·폭우·폭염·지진 피해 예방은 담았지만
한국공항공사의 2019년 보고서에서는 조류 충돌 예방에 대한 설명이 아예 사라졌다. 13쪽 ‘공항안전예보’를 설명하는 그래픽에서 안전예보 요소로 ‘조류’라는 단어가 나오는 게 유일하다.
2020년 이후 나온 보고서에서도 ‘조류’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폭설이나 폭우, 폭염, 지진 등으로 인한 피해 예방, 드론의 침투 대비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조류 충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조류 충돌’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서 조류 충돌 예방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재난에 비해서 그만큼 관심이나 노력, 투자가 소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내놓은 2023/2024 ESG 보고서에도 조류 충돌 예방과 관련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지난 2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철새들이 날고 있다.


문제는 2017년 47건까지 줄었던 공항 내 조류 충돌은 다시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에서 조류 충돌을 완전히 삭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전용기(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년 6개월간 국내 공항에서는 '조류 충돌'이 623건 발생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108건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운송량이 감소한 2020년 76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109건, 2022년 131건, 2023년 152건으로 다시 늘고 있다.
한국공항공단은 2024년 보고서에서 환경 · 사회적 영향도와 재무적 영향도를 종합해 ‘12대 지속가능경영 중대 이슈’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12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재난안전관리체계 고도화’였다. 이번 제주항공 사고에서 나타났듯이 조류 충돌도 그 재난에 포함된다.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은 “공항에 조류 퇴치를 하는 사람만 있을 뿐, 조류 생태 전문 연구자가 없는 실정”이라면서 “공항 운영 중에도 조류 서식과 이동 상황이 자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조류 생태 전문 연구자가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거의 매일 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항공 보고서 ‘정비’ 딱 두 차례 등장
이번에 사고를 낸 제주항공도 ESG 보고서를 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평소 제주항공이 항공기 정비를 철저히 했느냐를 놓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항공기 정비에 대한 보고서의 서술 내용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제주항공의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표지.


제주항공의 ‘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정비’라는 단어가 딱 두 군데 등장한다.
42쪽에 “대표이사 직속 안전보안본부를 배치하고, 본부 아래 안전기획팀, 안전품질팀, 안전관리팀, 항공보안팀의 총 4개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략) 또한, 운항, 정비, 객실, 통제, 운송, 화물 부문의 안전관리자가 안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라고 서술했다. 실무자부터 경영진까지 피라미드식으로 4개의 회의체가 있고, 이를 통해 안전관리를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항공기 정비 업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비’라는 단어가 두 번째 등장하는 것은 46쪽으로 제주항공은 국제항공운송협회(lATA)에서 개발한 안전평가 프로그램 IOSA(IATA Operational Safety Audit)의 인증을 받았다고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 IOSA 인증은 조직, 운항, 운항 통제, 정비, 객실, 지상조업, 화물, 보안 등 항공사 운영 전 부문 약 920개 항목에 대한 인증을 취득하는 제도라는 설명이 전부다.
보고서는 운항 승무원이나 객실 승무원의 안전 운항 훈련, 항공사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 등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항공기 정비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어 어떤 노력을 펼치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볼 수 없다.
제주항공은 이중 중대성 평가에서 4개 전략 이슈를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사고 및 안전 관리’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기는 했다. 이중 중대성 평가란 기업의 경영활동이 사회 및 환경 등 외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인 영향 중대성(Impact Materiality)과 재무 중대성(Financial Materiality)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요한 경영 이슈를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정비사 적고 운항 스케쥴은 '빡빡'
제주항공 사고 기종은 보잉 737-800으로,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도 김포공항에 제주로 가던 같은 기종의 제주항공 7C101편이 랜딩기어 이상으로 회항했다.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노르웨이에서도 같은 기종의 KLM 여객기가 유압장치 고장으로 비상 착륙했다.

국내 공항의 모습. [사진 한국공항공사]


이로 인해 보잉 737-800 기종 자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더불어 제주항공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기 가동률을 높였고, 이 과정에서 정비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토교통부 항공 종사자 통계에 따르면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의 경우 2023년 기준으로 항공기 1대당 정비사가 1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1대당 17명, 아시아나항공은 16명의 정비사가 일하고 있다. 다른 LCC인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 역시 항공기 1대당 정비사 11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비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항공의 항공기 운항 시간은 다른 LCC보다 길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올해 3분기 여객기 1대당 월평균 운항 시간은 418시간으로, 국내 주요 6개 항공사 가운데 가장 길었다.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355시간)이나 아시아나항공(335시간)은 물론 LCC인 진에어(371시간), 티웨이항공(386시간), 에어부산(340시간)보다도 길었다. 이번 사고 항공기 HL8088는 사고 전날 7회, 사고 전 48시간 동안 13회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항공의 경우 평소 잦은 항공기 운항과 빡빡한 정비 스케줄로 정비사들이 기체를 제대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항공기 1대를 점검하는 시간은 30분 미만이어서, 사실상 고속버스 점검 시간보다도 짧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제 사고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조류 충돌이든, 정비 불량이든, 이번 참사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곳에 재원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다"라는 안전 관리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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