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폭설…기업도 기후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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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내린 폭설로 28일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경기도 수원 SK마이크로웍스공장 내 물류창고 천장이 무너졌다.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지난달 26~28일 서울 등 수도권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서울의 경우 1907년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월 적설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30㎝에 가까운 적설을 기록했고, 수원의 경우 적설이 40㎝가 넘었다.

이번 눈은 수분을 많이 함유한 ‘습설(濕雪)’이었기에 지붕과 나무에 쌓인 눈으로 피해가 속출했다. 곳곳에서 공장 지붕과 건물이 무너졌고,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이번 눈으로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례적 폭설은 기후변화 탓

서울은 서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평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아니다. 충남이나 호남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한반도에서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때는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서해를 거쳐 남하할 때다. 찬 공기가 서해 상공을 지나면서 수증기와 만나면서 눈구름이 발달하고 눈구름이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눈을 쏟는다.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북서쪽에 황해도가 자리 잡고 있다. 북서쪽에서 눈구름이 들어와도 황해도 옹진반도에 눈을 쏟는다. 수도권에 이르면 눈구름이 소진돼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30㎝ 안팎의 많은 눈이 내리기는 했지만, 117년 만에 최대치로 기록된 데는 기후변화로 높아진 서해 수온 탓이다. 지구 기온과 해수 온도의 꾸준한 상승 탓에 서해 수온은 평년보다 1~2도 높게 유지됐다. 해기차(海氣差), 즉 기온과 수온의 차이가 커 눈구름이 강하게 발달했다.

 

강한 서풍에 눈구름 수도권 직격

여기에 바람 방향도 한몫했다. 평소 같은 북서풍이 아니라 강한 서풍이 눈구름을 서해에서 직접 수도권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니 겨울철 충남이나 호남에서 보던 폭설이 수도권에도 나타난 것이다. 물론 서풍이 분 것도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북극 지방의 온난화로 극지방을 에워싸고 흐르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탓이다. 빠르게 돌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남북으로 출렁거리고 뱀처럼 꾸불꾸불한 사행(蛇行)을 한다.

이번 폭설에서는 약해진 제트기류에서 ‘절리(切離) 저기압’이 직접 원인이다. 절리 저기압이 동쪽 고기압에 막혀 북한 함경도 상공에서 정체되는 ‘블로킹 현상’이 생겼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공기가 흐르는 저기압의 특성상 북한 쪽 서해에서는 북서풍이 강하게 불었고, 남쪽 중부지방에서는 서풍이 강하게 불었다. 서해의 눈구름이 수도권으로 직접 밀려든 이유다.

이번 눈은 습설이라 피해가 컸다. 1세제곱미터(㎥)에 물을 가득 채우면 1톤(1000㎏)의 무게가 나가지만, 눈은 그보다 무게가 작다. 수분이 적은 건설은 1㎥의 무게가 100~200㎏ 정도이지만, 습설은 300~600㎏이나 된다. 습설은 잘 뭉쳐지는 특성이 있어 집이나 자동차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로세로 각 10m의 건물에 습설이 30㎝ 쌓였다면, 눈의 무게가 18톤에 이른다. 그러니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공장 지붕이 무너지는 것이다.

 

극한 기상으로 인한 피해 대비해야

이번 폭설 뒤에는 기후변화가 있다면, 이런 현상은 앞으로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기후 적응 시스템을 잘 갖춰야 하겠지만, 개별 기업도 기후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후 리스크 관리에는 온실가스 감축도 포함되지만, 폭우와 홍수, 산사태, 태풍, 폭설, 가뭄 등 극한 기상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후 적응 대책도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동작구에는 시간당 141㎜의 폭우가, 서울 강남에도 이틀 동안 483㎜의 비가 퍼부었다. 지난 9월 경남 창원에는 이틀 동안 530㎜, 7월에는 전북 익산에 이틀간 309㎜의 폭우가 쏟아졌다.

‘극한 호우 재난문자’ 발송 기준은 1시간 누적 강수량 50㎜이면서 동시에 3시간 누적 강수량 90㎜가 관측된 경우다. 재난 문자 발송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호우가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면 웬만한 공장은 침수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지난 2022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심각한 피해를 겪었다. 인근 냉천이 범람해 공장 설비가 침수됐고, 3개월 동안 190만 톤의 철강 제품 생산 차질로 약 2조 원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봤다. 사고 당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적인 재난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 기업에 적응보고서 제출 요구

영국에서는 2008년 기후변화법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주요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기업이 직면할 잠재적 기후 위험과 이들 위험에 대한 대응 전략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정부 및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을 보장하려는 목적이다.

영국의 주요 기업 중 약 90개 이상의 조직이 정부에 적응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주요 공공 서비스 제공업체(수도 및 전력 회사), 교통 인프라 운영자(공항, 철도 등), 통신 기업, 에너지 및 가스 회사 등이 포함됐다.

영국의 기업들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기후 위험 평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뭄, 폭우, 해수면 상승 등의 위험 분석 ▶기후 재난 대비 계획: 극단적 기후 상황에서 서비스 유지와 고객 보호를 위한 계획 ▶적응 전략: 기업의 운영과 서비스를 기후 변화에 적합하게 조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 ▶환경 지속 가능성: 배출 감소 및 자연 기반 해결책(예: 서식지 복원)을 포함한 지속가능성 전략 등이 들어 있다.

 

한국환경연구원, 기업에 컨설팅도

국내에서도 기업 사업장의 기후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0여 년 전부터 나왔다. 2014년 7월 환경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현재 한국환경연구원, KEI)은 기업들이 기상이변에 얼마나 취약한지 스스로 진단하고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도구(CCRAT)’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에 나섰다. 당시 개발했던 CCRAT는 폭염·홍수·호우·폭설·한파 등 5가지 재해별로 각 기업이 얼마나 대비가 돼 있는지를 체크리스트(20개 항목)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에 기업의 매출액과 자산, 사업장 위치(시·군·구) 등을 입력하면 자연재해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영업·매출 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기후변화 예상 시나리오와 기업의 성장 전망 시나리오에 맞춰 자연재해가 기업의 매출액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산출해 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환경연구원의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KACCC)에서 CRAS(Climate Change Risk Assessment System)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CRAS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의 정보를 카테고리로 구분해서 기후변화 리스크의 정의, 전달경로, 비즈니스 영향, 적응옵션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진단 체크리스트, 미래 기후전망 자료(RCP Scenario)를 활용해 기후변화 리스크의 변화와 피해 금액을 추정할 수도 있다. 기업들은 환경부와 KACCC와 협의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고,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ESG 경영 차원에서도 관심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도 기업 단위의 기후 리스크 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필요도 있다.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는 기업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리스크와 기회를 효과적으로 공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기후변화가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 재무 계획에 미치는 실제적·잠재적 영향을 평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극단적인 기후 재난 상황이 기업의 자산과 운영,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기후 리스크에도 관심을 갖고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후 리스크 관리 대책은 업종에 따라, 사업장의 규모와 위치에 따라 달라야 하겠지만, 유비무환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동일하다. 미리 대비한다면 가래가 아닌 작은 호미로도 위험을 충분히 막을 수도 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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