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짓고 광역상수도 공급하기...능사 아니다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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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댐 상수도관망 고장 33만명 ‘불편’

지자체 지방상수도보다 광역상수도 선호

수질 양호하고 지역개발 규제 해소 가능

전국 수돗물 절반을 광역상수도가 공급

광역상수도 사고·오염 땐 큰 피해 우려

비상 공급할 최소한의 상수원 유지해야

 

충남 보령광역상수도 누수로 서북부 4개 시·군 상당수 지역에 수돗물 공급이 끊긴 가운데 8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사무소 앞에 생수를 받으려는 군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지난 8일과 9일 서산·당진·홍성·태안 등 충남 서북부 4개 시·군 주민 33만4000여 명이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해 큰 불편을 겪었다.

사고는 충남 보령댐 광역상수도 공급 라인의 고장 탓이다. 지난 7일 오후 8시80분쯤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에서는 광역상수도관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한국수자원공사 등에서는 광역상수도관 내 공기제거용 밸브를 수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사고는 수리 완료 후 이물질 제거를 위해 이토밸브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열린 이토밸브가 고장 나 닫히지 않았다. 고장난 밸브는 1998년 보령 광역상수도 홍성가압장 준공 당시 설치한 28년이나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서산 등 4개 시·군에는 단수가 됐다. 주민들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고, 카페·식당 등도 영업을 일시 중단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급식이 중단돼 학생들이 오전에 귀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수 지역에는 15톤 물차 45대, 5톤 물차 6대가 동원됐고, 0.4L 병물 48만4000개와 1.8L 병물 15만7000개가 긴급 지원됐다.

밸브 교체 후 9일 새벽부터 이들 지역에 수돗물 공급이 순차적으로 재개됐는데, 시민들은 짧게는 4시간 길게는 20시간 이상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했다.

수돗물 공급이 재개된 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물질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수돗물이 공급되는 바람에 수도꼭지에서 누런 흙탕물이 나오기도 했다.

 

전국 상수원보호구역 면적 10년 새 20% 줄어

보령댐 광역상수도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다행히 이른 시간 내에 수습됐지만, 광역상수도를 이용하는 것이 항상 편리하기만 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냈다.

광역상수도는 맑은 물을 풍부하게 공급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수의 광역상수도 취수원에 의존하게 된다. 이번처럼 광역상수도 공급시스템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그 공급 라인을 이용하는 다수의 시민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가뭄이나 오염사고 때도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많은 시민, 넓은 지역에 수돗물 공급이 장시간 중단될 경우 사회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광역상수도 공급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대신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소규모 정수장과 취수장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상수도 통계’ 등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맡는 광역상수도와 지방자치단체가 맡은 지방상수도를 더한 전체 상수도 취수량 중에서 광역상수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47.4%로 집계됐다. 1995년에는 12.4%, 2016년 28.3%이었는데, 어느새 광역상수도 수돗물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국 상수원 보호구역 숫자는 2002년 369곳에서 2022년 268곳으로 20년 사이에 27.4%가 줄었다. 상수원 보호구역 총면적도 2002년에는 서울시 면적의 두 배 수준인 1260.92㎢에서 2022년 1121.35㎢로 11.1% 줄었다. 보호구역 면적이 가장 넓었던 2012년 1406.57㎢과 비교하면, 최근 10년 사이 20.3%나 줄었다.

 또, 전국 취수장 숫자는 2012년 637곳에서 2021년 514곳으로 10년 사이 19.3% 줄었고, 정수장도 같은 기간 531곳에서 482곳으로 9.2% 감소했다.

 

 지난해 봄 가뭄의 고통을 겪은 광주광역시의 경우 2002년에는 상수원보호구역이 5곳이었는데, 현재 2곳으로 줄었다. 가뭄이 심해지고 주암댐 등의 광역상수도 공급이 줄어들자 광주시는 영산강 승촌보 상류에 있는 고정보인 덕흥보에서 임시로 물을 취수해 용연정수장으로 보내 수돗물을 생산해야 했다.

 

충남지역 취수장 없애고 보령댐에 의존

이번에 사고로 불편을 겪은 충남 서부지역에서는 기존 상수원보호구역이나 취수장을 없애고 보령댐에 의존하는 지역이 늘었다. 보령댐은 보령시뿐만 아니라 주변 서산·당진·서천·청양·홍성·예산·태안 등 충남 8개 시·군의 주민 50만 명과 5개 발전소 등에 생활·공업·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하지만 2014년 이후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보령댐에서 물을 공급받는 충남 서북지역의 경우 2002년에는 상수원 보호구역 26곳이었는데, 현재는 6곳으로 줄었다. 77%가 사라진 것이다.

금강 백제보 하류의 취수장. 보령댐에 보내기 위한 물을 취수하는 곳이다. 수질이 양호한 편이 아니어서 보령댐에 보내기 전에 간단한 정화 과정을 거친다. 강찬수 기자

보령댐 저수율이 낮아지는 등 가뭄이 조금만 심해져도 이들 지역은 어려움을 겪는다. 가뭄 때면 보령댐에서는 금강 상류 대청댐에서 내려보낸 물을 백제보와 금강 하굿둑 사이에서 취수한 다음 도수로를 통해 이송한 물을 사용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도수로를 통해 물을 이송하는 과정에서는 전력도 소비해야 한다.

더욱이 백제보 하류에서는 유해 남세균 녹조도 자주 발생한다. 수질이 좋지 않은 금강 하류의 물을 보령댐으로 바로 보낼 경우 보령댐에서도 녹조가 번질 수 있다. 도수로를 거쳐 보령댐으로 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간단한 정수처리도 해야 한다. 하지만 도수로를 거치면서 물 정수해서 댐에 공급하고, 댐에서 취수한 다음 다시 제대로 정수해서 수돗물을 공급하는 비효율적인 일도 벌어진다.

그동안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성과로 홍보하기 위해 금강 하류의 물을 보령댐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보령댐에 공급하는 물을 취수하는 지점이 백제보 상류가 아니라 하류 6.6㎞ 지점이어서 백제보가 없었더라도 보령댐 도수로 자체는 운영이 가능하다.

도수로만으로 보령댐 광역상수도 문제의 해결이 어렵게 되자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충남 서부권 광역상수도 사업을 서둘러왔다. 내년에 완공하게 될 이 사업은 대청댐에서 하루 9만6000㎥의 물을 서산·당진 등 5개 시·군 25만 명에게 공급하게 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지난 7월 전국에 기후대응댐 14곳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충남 청양에 5900만㎥ 규모의 지천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지천댐이 건설되면 연간 5500만㎥의 용수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천댐 계획은 주민 반발로 일단 보류됐지만, 이 역시 크게 보면 지역의 소규모 상수원 보호구역은 없애고 댐을 지어 대체하려는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녹조 발생하면 수돗물 흙냄새 확산 우려도

현재 한강 팔당댐에서 취수한 물이 인천이나 경기도 안성까지 가고 있는데, 만일 팔당댐에 녹조가 발생한다면 2011년 11월 수도권 전체가 '악취 파동'을 겪었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2011년 당시 북한강에서 발생한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 녹조가 팔당호로 유입됐고, 12월 중순까지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지에서는 한 달 내내 수돗물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남세균이 부산물로 만든 지오스민(geosmin)이란 물질이 흙냄새의 원인이었다.

 

지난 8월 낙동강에서 관찰된 남세균 녹조. 사진 곽상수

실제로 지난여름 인천 수돗물에서는 흙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이 역시 남세균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다행히 이번에는 수도권 전체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남세균 녹조의 악취나 독소의 경우 그나마 정수장에서 고도정수처리를 하면 대체로 해결이 되지만, 지진이나 테러가 발생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대형 상수도관이 대규모로 파괴된다면 복구하는 데 시일이 걸리게 되고, 시민들은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광역상수도 수원인 댐의 물이 유해화학물질로 오염된다면 댐을 방류해 유해 물질을 빼내는 동안 여러 날 동안 취수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광역상수도로 물을 멀리 가져다 사용한 다음에는 그 지역에서 처리·배출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팔당호의 물을 수도권 곳곳으로 보내면, 서울을 지나는 한강 하류에서는 유량이 줄면서 생태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가뭄 때 한강 잠실수중보 위를 직접 지나는 물은 크게 줄어든다. 잠실수중보 하류는 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이 채우게 되는데, 잠실수중보 상류와 하류가 전혀 다른 강물이 될 수도 있다.

호남 지역의 경우 광역상수도 덕분에 주암댐 물을 광주·목포로 보낼 수 있어 지난해 가뭄을 버틸 수 있지만, 이는 섬진강 유역의 물을 다른 유역으로 보낸 것이어서 섬진강 유역의 물 부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수자원공사와 지자체 이해 맞아떨어져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방상수도보다 광역상수도를 선호하는 것이 광역상수도 의존도가 높아지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광역상수도를 공급하는 한국수자원공사와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는 댐을 짓고 상수도관 설치하는 사업을 벌이면 조직을 늘리는 데 유리하다. 물을 팔면 또 그만큼 수익이 생긴다.

자치단체장들 입장에서는 광역상수도 끌어오면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해 그곳에 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어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 또, 광역상수도를 사용하면 수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어 선거와 표를 의식하는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일석이조’다.

최근 경기도 평택시 송탄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논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곳 상수원보호구역은 평택시가 1979년 송탄취수장을 운영하면서 지정됐다.

문제는 규제 지역 면적이 물을 끌어가는 평택시보다 오히려 용인시 쪽이 더 넓었고, 40년 동안 지역 갈등 원인이 됐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입주하는 반도체 국가산단에 이곳 상수원보호구역이 포함되면서 상수원보호구역 해제가 추진되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 해제되려면 팔당호 광역상수도를 평택시에 공급해야 하고, 반도체 공장은 이를 대체할 다른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더 지으면 공업용수 수요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한강 수계 전체로도 물 부족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물 안보 차원에서 용수 관망 유지관리해야

이처럼 광역상수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지자체는 자체적인 수원 확보와 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가뭄에 대처할 탄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물 안보 차원에서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적절한 비율로 역할 나누고, 전국적인 용수 관망을 체계적으로 설치·관리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별로, 혹은 인근 지자체를 묶어서 비상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수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광역상수도를 이용한다 해도 비상시에 마시는 물 정도는 취수해 공급할 수 있도록 취수장을 유지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사고에 대비해 상수도관의 복선화를 서둘러야 한다. 지난달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홍배(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체 광역·공업상수도(총연장 5938㎞) 중 71.9%(4271㎞)가 단선 관로였다.

특히 전체 광역·공업상수도의 10.6%는 다른 관로와 연계 운영 등 비상 공급 조처를 하더라도 물을 공급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전체 단선 관로 16.4%는 설치한 지 30년이 지난 노후관으로 나타났는데, 단선 관로 복선화에는 투자가 인색한 편이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광역·공업상수도 복선화에 환경부가 투입한 예산은 492억원으로 전체 물관리 예산(23조9141억원)의 0.21%에 그쳤다.

환경부는 2040년까지 5785억원을 들여 광역상수도 40곳, 공업용수도 6곳을 복선화할 계획이지만, 기존 상수도관이 빠르게 노후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획을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환경연구원 김호정 박사 등 전문가들은 “도시 바깥에서 물을 끌어와 쓰고 버리는 지금의 도시 물관리 방식으로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면서 “국내 도시의 광역상수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외부 수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빗물 저장과 하수처리수 재이용 등 기후변화에도 영향받지 않는 수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뭄 대비와 물 수요 증가에 대처하는 방법이 댐 건설과 광역상수도 확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소규모 상수원이라도 잘 유지 관리하고, 수돗물 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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