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재해 경험자 “청정에너지에 돈 더 내겠다”

2024-04-15
조회수 274

 2021년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


버몬트 대학팀 미국인 6139명 설문

정치 성향이 기후정책 지지 결정 요인

재해 경험 있으면 지불의사도 달라져

 

산불·허리케인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경험한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기후 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버몬트대학과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2020년 12월과 2021년 1월 미국 거주자 6139명을 대상으로 청정에너지 전력 생산 비용에 대한 지불 의사를 조사했고, 이 내용을 정리해 최근 ‘글로벌 환경 변화(Global Environmental Change)’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의 대표적인 기후 정책에 이상 기상 현상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즉 2050년까지 100% 청정 전력 생산을 추진함으로써 전기 요금이 인상될 때 연간 얼마까지 추가로 지불할 수 있느냐를 물었다. 응답자들에게 5~265달러 사이 14가지 수치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조사에서 연구팀은 응답자들에게 산불·가뭄·허리케인·홍수·폭염 등 이상 기상 현상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고, 응답 내용을 실제 해당 지역의 기상 데이터와 비교해 확인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응답자 가운데 1498명은 기상 이변을 경험했다고 답했지만, 외부 데이터로는 이들이 실제 경험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실제 경험자 연간 106달러 추가 지불 의사

조사 결과, 최근 5년 동안 이상 기상 현상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사람은 이를 보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 112달러(약 15만5000원, 95% 신뢰수준에서 57~167달러)를 더 지불하겠다고 응답했다. 보고자가 비(非)보고자보다 전기요금으로 약 30%를 더 지불할 수 있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또, 실제 이상 기상을 경험한 것으로 검증된 사람은 검증된 경험이 없는 사람들보다 71달러(약 9만8000원, 95% 신뢰수준에서 16~127달러)를 더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비보고자와 미(未)검증 보고자에 비해 검증된 보고자는 약 19% 많이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이와는 별도로 미검증 보고자를 제외한 상태에서 검증된 보고자와 비보고자를 비교했을 때, 보고자는 비보고자에 비해 106달러(약 14만6800원, 95% 신뢰수준에서 42~170달러)를 더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연구 저자인 버몬트대의 트리샤 슈럼은 “기후 위기가 피상적일 때는 사람들이 완화 정책을 위해 실제로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데 주저했지만, 기후 위기가 문앞에 닥쳤을 때 사람들이 기꺼이 '아, 알겠습니다.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팀은 이상 기후를 실제 경험한 것으로 검증된 사람이 제시한 106달러가 보고자 전체(검증·미검증 모두 포함)가 제시한 112달러보다 낮은 것에 대해 연구팀은 ‘약한 상관관계’로 설명했다. 이상 기후 경험과 기후 위기 완화 행동 의지(추가 지불의사) 사이에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지만, 약하게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미검증 응답자 중에는 실제 기상 재해를 경험했지만, 연구팀이 근거 자료를 찾지 못해 미검증으로 분류됐을 가능성도 있다.

 

산불·허리케인 경험자 지불의사 높아

201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을 덮친 허리케인 플로렌스. 


응답자가 경험한 이상 기상 현상의 종류도 지불 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토네이도와 가뭄은 그 자체로는 지불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허리케인과 산불은 지불 의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산불은 허리케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heatwave)과 홍수도 지불 의사와 연관성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산불과 허리케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더 기억에 남거나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개인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수단을 통해 그 영향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영향은 각각 에어컨과 관개용수로 개선될 수 있지만, 산불·허리케인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게 돼 기후 정책을 지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 산불과 허리케인은 광범위하고 눈에 띄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가뭄보다는 더 극적인 사건인 허리케인과 산불을 더 정확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토네이도 역시 극적이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지만, 직접적인 영향 범위가 더 작고 기후 변화와의 연관성이 더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후변화는 사람 탓’ 믿으면 더 지불

이번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수는 기후 변화 믿음(즉, 기후 변화가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는 믿음)이었다. 기상 이변 경험보다 대략 3~5배 더 영향력이 컸다.

연구팀은 “기후 변화가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이상 기후를 직접 경험할 경우 기후 정책 지지 여부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분석 모델에서 지난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트럼프에 투표한 유권자는 청정에너지 정책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민주당 바이든에 투표한 유권자보다 훨씬 낮았다.

그렇지만 바이든 투표자가 트럼프나 제3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보다 극단적인 기상 사건을 보고할 가능성이 더 높지는 않았다.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없이 대통령 선거에 투표한 유권자가 비투표자보다 극단적인 사건을 보고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트럼프에 투표한 유권자 중에서도 기상 이변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유권자는 그러한 기상 현상을 경험하지 않은 유권자보다 청정에너지 정책에 찬성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공동저자인 버몬트대 레이첼 굴드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사건을 경험했을 때 청정에너지 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