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패러독스’…기후대책에 발전소 CO2 배출은 오히려 증가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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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사진=강찬수 기자


기후위기에 화석연료는 좌초 자산 취급
연료값 하락 CO2배출 증가한다는 이론
콜로라도대학팀 종전과 다른 원인 제시
위험자산 걱정에 정부는 환경규제 완화
연료 장기공급계약이 발목 잡는다는 것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각국이 재생에너지 전환 등 기후 정책을 펴면서 땅속에 묻혀 있는 석탄·석유·가스 등은 ‘좌초 자산’ 취급을 받는다. 자산임에는 분명하지만 캐내 쓸 수 없어 ‘그림의 떡’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채굴 회사가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화석연료를 더 많이 캐내려 할 것이고, 이는 화석연료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발전소에서는 값싼 연료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게 돼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그린 패러독스(green paradox)’다.

과연 이 같은 ‘녹색 역설’은 사실일까. 화석연료의 가격이 유일한 원인일까.

49개국 1만1941개 발전소 분석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좌초 화석연료 자산이 발전소 이산화탄소(CO2) 배출에 미치는 영향 세계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문제를 다뤘다.

연구팀은 발전소 CO2 배출량이 늘어나는 ‘녹색 역설’이 존재한다고 밝히면서도, 원인이 다른 데 있음을 제시했다. 화석연료 가격이 내린 탓이라기보다는 환경 규제 완화와 장기 연료 공급계획에 묶인 탓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파리 기후협정이 체결된 2015년을 전후한 2009년과 2018년 두 시기에 모두 가동했던 전 세계 49개국 화력발전소 1만1941곳의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를 분석했다. 또, 발전소가 위치한 국가의 특성, 국가별 좌초 화석연료 매장량 추정치 등의 자료를 활용했다. 좌초 자산 여부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및 2°C로 억제하는 기후 시나리오에 따라 결정된다.

연구팀은 어떤 요인들이 발전소 배출량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기 위해 회귀 모델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발전소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을 국가별 탄소예산 및 전력 부문의 남은 연간 탄소 예산과 비교했다. 탄소예산(Carbon Budget)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일정 수준에서 억제하기 위해 앞으로 인류가 배출해도 괜찮은 온실가스의 양을 말한다.

장기 계약 연료 소진하려는 유혹 작용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석유·석탄·가스의 가격이 평균적으로 2012년(파리협정 체결 전)과 2017년(파리협정 체결 후) 사이에 하락한 것을 확인했다.

또, 석탄과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발전소의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대로 석탄·석유 가격과 발전소 CO2 배출량은 반비례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화석연료의 가격 변수는 예상과 달리 배출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과는 화석 연료 공급업체가 석탄, 석유, 가스 투입 가격을 낮춤으로써 단기적으로 배출량을 늘릴 것이라는 기존의 녹색 역설 이론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발전소는 화석연료 공급업체와 장기적으로 체결한 미래 계약으로 인해 석탄, 석유, 가스의 현물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더불어 연구팀은 땅속에 화석연료를 많이 보유한 국가일수록 발전소 CO2 배출량이 많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화석연료 좌초 자산이 많은 나라의 경우 환경 규제가 느슨해서 발전소의 배출량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좌초 자산을 많이 보유한 국가에서는 발전소 발전 용량을 더 많이 활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했다”고 지적했다.

좌초 자산이 더 많은 국가에 위치한 발전소는 발전소 가동률을 높여 이미 구매한 연료의 처리를 가속화하려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갖고 되고,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CO2 배출량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러시아 탄소예산 소진 많을 수도
이처럼 좌초된 화석연료를 발전소에서 서둘러 태울 때 유발되는 CO2 배출량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1208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지구 기온 상승을 1.5°C로 제한할 가능성을 50%로 설정할 때 전력 부문 탄소 예산의 0.21%를 차지한다. 또, 지구 기온 상승을 1.5°C 이하로 제한할 가능성을 66%로 강화할 경우 전력부문 탄소 예산의 0.28%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됐다.

기온 상승 억제 목표를 강화할 경우(목표 달성 확률을 높일 경우) 전체 전력 부문의 연간 탄소 예산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좌초된 화석연료로 인한 발전소의 추가 탄소배출이 탄소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게 된다.

화석연료 좌초 자산과 관련된 추가 연간 배출량을 국가별로 보면 중국은 연간 309만 톤으로 국가 전력 부문의 남은 탄소 예산에서 0.19%~0.26%를 차지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발전소 연간 추가 배출량이 전력 부문 탄소 예산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각각 1.12%~1.61%와 0.84%~1.19%에 이른다. 인도(0.02%~0.04%)와 일본(0.0010%~0.0013%)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다.

연구팀은 “1년만 보면 좌초된 자산으로 인한 추가 탄소 배출량이 탄소 예산에 비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누적하면 우려스러운 그림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10년을 누적하면 전 세계 전력 부문의 남은 탄소 예산의 2.1~2.8%에 해당할 수 있다.

또,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10년 동안 지속되면 전력부문의 남은 탄소 예산 가운데 각기 11.2~16.1%와 8.4~12%를 소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석연료 소비 측면에도 주의 기울여야”
결국 좌초 위험에 처한 화석연료 자산을 많이 보유한 국가에서는 정부 당국자가 재정적 인센티브를 고려해 환경 기준을 완화하려 하고, 이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는 발전소가 더 많은 탄소 오염을 배출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환경 규제 완화와 발전소의 장기 화석연료 계약에 대한 기득권 탓에 발전소가 화석 연료를 더 일찍 연소할 의향을 갖게 하고, 이것이 녹색 역설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라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이런 녹색 역설 탓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 국가 전체의 탄소 예산에 부담을 주게 되고, 전력 부문의 탄소 예산을 고갈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좌초된 자산 효과로 인해 매년 추가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많지 않지만, 전력 부문의 남은 탄소 예산에 대한 누적 영향은 특정 국가에서는 상당할 수 있다”면서 “효과적인 에너지 전환 전략을 개발하려면 화석연료 소비와 수요 측면에도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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