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 기후변화협약 총회
25일 부산에서는 플라스틱 협약 회의 열려
환경문제 해결 위해 국제협력 절실한 상황
국가별 입장 차이 커 타결 전망은 밝지 않아
인류 번영은 이기심과 이타심 균형추 덕분
이기심이 이겨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어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 총회(COP29)가 열리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회의장 모습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와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 부산. 두 도시에서는 11월 환경 분야에서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지난 11일부터 카스피해(海) 서쪽 연안의 항구도시인 바쿠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는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유엔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 회의가 열린다.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은 21세기 인류가 가장 고민하는 환경문제다.
개도국 지원 연 6조 달러로 확대 논의
COP29가 22일로 예정된 폐막일을 지나서까지 회의가 지루하게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회의에도 뜨거운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을 위해 재정 지원하는 문제다. 선진국들이 현재 연간 1000억 달러를 내놓는 것도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지원의 성격을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보상까지로 확대하고, 기금의 규모도 1조 달러(약 1400조 원) 이상으로 대폭 늘리자는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 개도국들은 공공부문 1조 달러 외에 민간 재원으로 5조 달러를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다리기 끝에 재원 규모가 커지면 신흥경제국이나 중국 등도 기후 재원 기여국이 돼야 할 수도 있다. 불똥이 한국에도 튈 상황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 자체도 순조롭지 못하다. 올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해 기온 측정치만으로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인 1.5도 상승을 초과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도 기온 상승 목표 초과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감축 목표를 강화하는 등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기후변화협약, 파리기후협정의 추진 동력이 전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처럼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다시 탈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여부 핵심 쟁점
플라스틱 협약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국제 환경협약은 준비하는 데 통상 10년 이상 걸리지만, 국제 사회는 심각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약 준비를 2년 안에 다섯 번 회의로 마무리 짓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했다. 마지막 회의인 이번 INC-5를 앞두고도 각국은 이견은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시민들이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외치며 ‘플라스틱 수도꼭지를 잠궈야 한다(Turn Off the Plastic Tap)‘는 의미가 담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특히, 유럽연합(EU)·캐나다 등이 주를 이루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야심 찬 목표 연합(HAC)’과 사우디아라비아·중국 등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국을 주축으로 하는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이 대립하고 있다.
HAC는 플라스틱 전(全) 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90%가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만큼 생산량을 억제할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GCPS는 플라스틱 오염은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등으로 줄일 수 있다면서 생산 감축에는 반대하고 있다.
INC-5 개최국이자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인 한국은 HAC에 일원이어서 생산을 감축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한계를 지적하며, 생산 감축을 요구한다. 여기에 플라스틱 생산 단계를 플라스틱 재료인 폴리머의 생산부터로 볼지, 아니면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부터 볼지도 논란이다.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 내놓은 이유
언제나 그렇지만 국제 환경협약 당사국 회의장은 이타심과 이기심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지구 환경문제의 해결은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기에 국제 협력은 필수다. 국제협력이 이뤄지려면 다른 나라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필요하면 지원도 해야 한다. 이타심의 발휘가 필요한 대목이다.
국제 환경협약은 경제협약이기도 하다. 협약 조항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다. 생물다양성협약에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해서 얻은 이익을 자원을 제공한 나라와 공유하는 문제가 이슈다. 기후변화협약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기후기금에 얼마를 기여할 것이냐 등은 당장 각국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기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고민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와도 같다. 범죄를 자백하지 않고 버티면 둘 다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자신만 풀려나려고 자백하는 바람에 결국 둘 다 중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게 죄수의 딜레마다.
각국이 협력하면 장기적으로 지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익’을 모두가 얻게 되지만,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협력을 거부하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각국이 자기 입장만 추구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티핑포인트’를 넘기게 되면 모두가 실패자가 된다.
과거부터 환경협약 회의장에서는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CBDR)’ 원칙이다.
이 개념은 1992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 당시 ‘리우 선언’에서 처음 제시됐다. 지구 환경오염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개도국이 각각 다른 수준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이기심(자국의 경제적 부담 감소)과 이타심(전 지구적 책임 분담)의 균형을 찾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도 가국이 자발적으로 국가별 감축 목표(NDC)를 제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게 목표를 설정하되, 동시에 글로벌 목표에 기여하도록 했다. 이기심을 고려하면서도 이타심을 장려하는 방안이다.
생존하려면이기심과 이타심 모두 필요
지난여름 우리는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다. 푹푹 찌는 더위에 전국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3000명이 넘었다. 며칠 전까지도 11월에 걸맞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기후변화를 걱정했다. 지구 기온 상승 속도를 걱정했다.
서해 백령도 해변에 떠 내려온 플라스틱 물병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 강찬수 기자
그러다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기온이 뚝 떨어지자 언제 기후 위기를 걱정했느냐는 듯이 난방비 걱정이 앞선다. 유류세 인하율 축소로 오르는 기름값에도 신경 쓰인다.
코로나19 때 쓰고 버린 마스크, 배달 음식에서 나오는 일회용 포장재 쓰레기에 다들 플라스틱 위기를 걱정했다. 여름휴가 때 바닷가에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를 보면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건 지난여름 이야기가 됐다. 배달 음식 배달앱 수수료와 음식 가격 인상에 더 관심이 쏠린다.
이처럼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고, 짧디짧은 게 사람 기억이다. 이타심은 곧잘 이기심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렇다면 이기심은 늘 이기는가.
인류가 스스로를 위험에서 보호하고, 자원 경쟁에서 이겨내고,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 덕분이다. 동시에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생존 확률을 높였다. 이타적 행동과 호혜성의 원칙을 통해 신뢰와 협력을 강화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했다.
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에서 번영을 누리게 된 이유를 인간 개인과 집단이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개인의 생존과 집단의 안녕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 복합적인 전략이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만들어냈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라는 책에서 인간은 가족, 혈연 등 가까운 관계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간접적으로 보존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은 『사회적 본성(2012)』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이유는 집단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면서,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진화적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비틀거려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 COP29 회의장에서도 이기심은 만연했다. 의장국이자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석유와 가스는 ‘신의 선물’이다. 이 자원을 시장에 내놓는 것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COP29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COP29에서 핵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나처럼 회의장 주변에는 기업 로비스트들도 가득했다.
COP29 회의장이 아니라도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역시도 환경 내세며 이타심을 발휘하는 척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 웨스트 팜 비치에서 열린 선거 밤 파티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미국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Again, MAGA)’를 외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기심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 위기 해법을 강조하는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기반을 둔 바이든-해리스의 민주당의 ‘소심한’ 이기심 혹은 이기심과 이타심의 절충이 이기심의 본령에 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심이 이타심 껍질을 벗겨내고 이기고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이번 미국 대선이 아니더라도 국제 사회의 균형추가 이기심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에 ‘이기심’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서 이기심이 앞으로도 계속 득세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기후 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진다면, 휴머니티의 위기가 확산한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인류의 오랜 역사가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균형 찾기로 점철된 것처럼,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일시적인 혼란은 수습되기 마련이고 현명한 결정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타적인 행동과 이기적인 행동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말이다. 비틀거려도 결국은 한발씩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 기후변화협약 총회
25일 부산에서는 플라스틱 협약 회의 열려
환경문제 해결 위해 국제협력 절실한 상황
국가별 입장 차이 커 타결 전망은 밝지 않아
인류 번영은 이기심과 이타심 균형추 덕분
이기심이 이겨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어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 총회(COP29)가 열리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회의장 모습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와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 부산. 두 도시에서는 11월 환경 분야에서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지난 11일부터 카스피해(海) 서쪽 연안의 항구도시인 바쿠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는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유엔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 회의가 열린다.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은 21세기 인류가 가장 고민하는 환경문제다.
개도국 지원 연 6조 달러로 확대 논의
COP29가 22일로 예정된 폐막일을 지나서까지 회의가 지루하게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회의에도 뜨거운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을 위해 재정 지원하는 문제다. 선진국들이 현재 연간 1000억 달러를 내놓는 것도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지원의 성격을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보상까지로 확대하고, 기금의 규모도 1조 달러(약 1400조 원) 이상으로 대폭 늘리자는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 개도국들은 공공부문 1조 달러 외에 민간 재원으로 5조 달러를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다리기 끝에 재원 규모가 커지면 신흥경제국이나 중국 등도 기후 재원 기여국이 돼야 할 수도 있다. 불똥이 한국에도 튈 상황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 자체도 순조롭지 못하다. 올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해 기온 측정치만으로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인 1.5도 상승을 초과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도 기온 상승 목표 초과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감축 목표를 강화하는 등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기후변화협약, 파리기후협정의 추진 동력이 전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처럼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다시 탈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여부 핵심 쟁점
플라스틱 협약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국제 환경협약은 준비하는 데 통상 10년 이상 걸리지만, 국제 사회는 심각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약 준비를 2년 안에 다섯 번 회의로 마무리 짓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했다. 마지막 회의인 이번 INC-5를 앞두고도 각국은 이견은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시민들이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외치며 ‘플라스틱 수도꼭지를 잠궈야 한다(Turn Off the Plastic Tap)‘는 의미가 담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특히, 유럽연합(EU)·캐나다 등이 주를 이루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야심 찬 목표 연합(HAC)’과 사우디아라비아·중국 등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국을 주축으로 하는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이 대립하고 있다.
HAC는 플라스틱 전(全) 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90%가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만큼 생산량을 억제할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GCPS는 플라스틱 오염은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등으로 줄일 수 있다면서 생산 감축에는 반대하고 있다.
INC-5 개최국이자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인 한국은 HAC에 일원이어서 생산을 감축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한계를 지적하며, 생산 감축을 요구한다. 여기에 플라스틱 생산 단계를 플라스틱 재료인 폴리머의 생산부터로 볼지, 아니면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부터 볼지도 논란이다.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 내놓은 이유
언제나 그렇지만 국제 환경협약 당사국 회의장은 이타심과 이기심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지구 환경문제의 해결은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기에 국제 협력은 필수다. 국제협력이 이뤄지려면 다른 나라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필요하면 지원도 해야 한다. 이타심의 발휘가 필요한 대목이다.
국제 환경협약은 경제협약이기도 하다. 협약 조항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다. 생물다양성협약에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해서 얻은 이익을 자원을 제공한 나라와 공유하는 문제가 이슈다. 기후변화협약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기후기금에 얼마를 기여할 것이냐 등은 당장 각국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기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고민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와도 같다. 범죄를 자백하지 않고 버티면 둘 다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자신만 풀려나려고 자백하는 바람에 결국 둘 다 중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게 죄수의 딜레마다.
각국이 협력하면 장기적으로 지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익’을 모두가 얻게 되지만,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협력을 거부하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각국이 자기 입장만 추구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티핑포인트’를 넘기게 되면 모두가 실패자가 된다.
과거부터 환경협약 회의장에서는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CBDR)’ 원칙이다.
이 개념은 1992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 당시 ‘리우 선언’에서 처음 제시됐다. 지구 환경오염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개도국이 각각 다른 수준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이기심(자국의 경제적 부담 감소)과 이타심(전 지구적 책임 분담)의 균형을 찾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도 가국이 자발적으로 국가별 감축 목표(NDC)를 제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게 목표를 설정하되, 동시에 글로벌 목표에 기여하도록 했다. 이기심을 고려하면서도 이타심을 장려하는 방안이다.
생존하려면이기심과 이타심 모두 필요
지난여름 우리는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다. 푹푹 찌는 더위에 전국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3000명이 넘었다. 며칠 전까지도 11월에 걸맞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기후변화를 걱정했다. 지구 기온 상승 속도를 걱정했다.
서해 백령도 해변에 떠 내려온 플라스틱 물병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 강찬수 기자
그러다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기온이 뚝 떨어지자 언제 기후 위기를 걱정했느냐는 듯이 난방비 걱정이 앞선다. 유류세 인하율 축소로 오르는 기름값에도 신경 쓰인다.
코로나19 때 쓰고 버린 마스크, 배달 음식에서 나오는 일회용 포장재 쓰레기에 다들 플라스틱 위기를 걱정했다. 여름휴가 때 바닷가에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를 보면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건 지난여름 이야기가 됐다. 배달 음식 배달앱 수수료와 음식 가격 인상에 더 관심이 쏠린다.
이처럼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고, 짧디짧은 게 사람 기억이다. 이타심은 곧잘 이기심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렇다면 이기심은 늘 이기는가.
인류가 스스로를 위험에서 보호하고, 자원 경쟁에서 이겨내고,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 덕분이다. 동시에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생존 확률을 높였다. 이타적 행동과 호혜성의 원칙을 통해 신뢰와 협력을 강화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했다.
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에서 번영을 누리게 된 이유를 인간 개인과 집단이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개인의 생존과 집단의 안녕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 복합적인 전략이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만들어냈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라는 책에서 인간은 가족, 혈연 등 가까운 관계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간접적으로 보존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은 『사회적 본성(2012)』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이유는 집단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면서,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진화적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비틀거려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 COP29 회의장에서도 이기심은 만연했다. 의장국이자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석유와 가스는 ‘신의 선물’이다. 이 자원을 시장에 내놓는 것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COP29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COP29에서 핵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나처럼 회의장 주변에는 기업 로비스트들도 가득했다.
COP29 회의장이 아니라도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역시도 환경 내세며 이타심을 발휘하는 척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 웨스트 팜 비치에서 열린 선거 밤 파티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미국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Again, MAGA)’를 외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기심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 위기 해법을 강조하는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기반을 둔 바이든-해리스의 민주당의 ‘소심한’ 이기심 혹은 이기심과 이타심의 절충이 이기심의 본령에 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심이 이타심 껍질을 벗겨내고 이기고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이번 미국 대선이 아니더라도 국제 사회의 균형추가 이기심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에 ‘이기심’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서 이기심이 앞으로도 계속 득세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기후 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진다면, 휴머니티의 위기가 확산한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인류의 오랜 역사가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균형 찾기로 점철된 것처럼,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일시적인 혼란은 수습되기 마련이고 현명한 결정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타적인 행동과 이기적인 행동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말이다. 비틀거려도 결국은 한발씩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