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성 사정? 빈대가 짝짓기하는 특이한 방식

2023-11-08
조회수 560

빈대. [자료: 미 환경보호국(EPA)]


요즘 빈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라졌던 빈대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1970년대에 빈대를 의인화한, 빈대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떠오릅니다.

친근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만큼 빈대가 익숙했던 것이겠지요.

 

반세기 만에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빈대는 알고 보면 신기한 ‘곤충’입니다.

 

빈대는 1억 년 전 공룡 시대 때도 존재했으며, 약 6600만 년 전 공룡을 비롯해 육상 생물 종의 75%를 절멸시킨 대멸종도 견뎌내며 뛰어난 진화 능력을 보여왔습니다.

숙주를 갈아타던 빈대는 인류가 출현하자 인류를 숙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암컷 배를 찌르는 짝짓기 방식

 빈대의 크기는 5~7mm 정도입니다.

우선 빈대는 짝짓기할 때 ‘외상성 사정(外傷性 射精, Traumatic insemination)'을 합니다.

수컷이 암컷 생식기에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뚫고 생식기를 꽂은 뒤 정자를 쏟아붓는 식입니다.

 

정자는 몸을 통과해 암컷의 난소에 들어가 수정란이 됩니다.

암컷은 짝짓기 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게 되고,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외상성 사정이라고 합니다.

 

수컷은 사정하기 전에 암컷의 냄새를 맡습니다.

암컷이 이전에 짝짓기한 경험이 있느냐를 파악하고, 짝짓기한 경험이 없으면 충분히 사정합니다.

반대로 암컷이 이미 짝짓기한 경험이 있다면 수컷은 사정을 적게 합니다. 몸에 정자를 간직하고 있다면, 자신의 정자로 수정시킬 확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정자가 고갈되면 암컷은 다시 짝짓기를 통해 정자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정란을 가진 암컷은 알을 낳습니다.

암컷의 생식기는 알을 낳을 때 사용합니다.

 

근친 교배에도 왕성한 번식

빈대의 짝 짓기. [자료=EPA]

한 번 사람의 피를 빨아서 영양을 채운 후에는 약 10일 동안 하루에 1~7개의 알을 낳습니다.

전체적으로 10일 동안 5~20개의 알을 낳고, 그 후에는 다시 피를 빨아야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산란한 알은 수컷과 암컷의 비율이 거의 동일합니다.

 

암컷의 수명은 대략 1년 정도이고, 암컷 한 마리는 평생 평균 113개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암컷이 낳은 알은 부화한 뒤 5번의 탈피를 거치는 등 37일 걸려 성장한 후, 성체가 됩니다.

빈대는 성체로 자란 다음, 그들끼리 짝짓기하는, 즉 근친교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대는 근친교배하더라도 유전적으로 큰 문제가 없이 번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곤충을 포함한 동물은 근친 교배가 계속되면 유전적 결함이 점점 커져 개체군이 형성됐다가 붕괴되는 것이 보통인데 빈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대는 암컷 한 마리만 숨어들어도 숫자가 크게 불어납니다.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감지

빈대는 보통 3~7일마다 피를 빨아먹습니다.

대부분은 좁은 틈에서 숨어지내는 것입니다.

 

빈대는 인간 숙주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 그러니까 보통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에 활동합니다. 물론 배가 고프면 낮에도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고, 이를 향해 수m를 비교적 빠르게 이동합니다.

빈대는 적당한 숙주를 찾으면 입 부분으로 피부를 살펴보고, 혈액을 빨아들일 수 있는 모세혈관을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빈대가 사람의 피부 여러 곳을 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빈대가 적당한 곳을 찾으면, 5~10분 동안 피를 빨게 됩니다. 배를 채운 빈대는 숙주를 떠나 다시 틈 속으로 숨어들게 됩니다.

 

빈대가 특정한 질병을 옮긴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다만 빈대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이 검출된 경우는 있습니다.

빈대는 인체 흡혈로 수면을 방해하고, 히스타민을 사람 몸에 주입하기 때문에 가려움증, 이차적 피부 감염증 등을 유발합니다.

 

살충제 내성 유전자 확산

빈대가 낳은 알. [자료=EPA]


빈대와 관련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속담에도 빈대는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 대신 빈대가 열에는 약하다는 점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빈대는 열에 약해 5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쉽게 죽는다고 합니다.

 

최근 빈대는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더 골칫거리입니다.

흔히 사용되는 피레스로이드 계열 살충제를 해독하는 유전자를 갖게 된 것입니다.

 

1940~70년대에는 살충제인 DDT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빈대가 자취를 감췄었는데, DDT 사용이 금지되면서 전 세계 여기저기서 다시 빈대가 출몰하고 있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DDT에 대해서도 빈대가 저항성을 보였기 때문에, DDT 금지 자체보다는 과거보다는 살충제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 살충제 남용으로 그에 대한 저항성을 키워온 것 등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편, 2008년 12월 언론에는 연세대의대 기생충학교실 용태순 교수팀 대한기생충학회지에 보고한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1년 전인 2007년 12월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30세 여성이 집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20여 년 넘게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빈대가 발견된 것과 관련, 당시 용 교수팀은 국내에 숨어있던 것이라기보다는 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빈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호텔에서는 일단 짐을 차량에 둔 상태에서 호텔 방을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어려우면 욕실에 짐을 둔 다음 객실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침대 시트를 뒤로 당기고 매트리스 등에 살아있는 빈대나 검은 배설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벌레나 의심스러운 감염 징후가 발견되면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다른 객실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옷을 뜨거운 물로 세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탁 후 건조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중고 매트리스나 침대는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서 빈대가 발견되면 직접 빈대를 제거하려 들지 말고, 전문 해충 구제 업체에 연락해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


참고문헌

Miller, D.M. and  A. Polanco.  Bed Bug Biology and Behavior. 미국 환경보호국(EPA).


Morrow, E.H. and G. Arnqvist. 2003. Costly traumatic insemination and a female counter-adaptation in bed bugs.

Proc Biol Sci.2003 Nov 22; 270(1531): 2377–2381. doi:10.1098/rspb.2003.2514.


Siva-Jothy, M. and A.D.Stutt. 2003.  A matter of taste: direct detection of female mating status in the bedbug.

Proc Biol Sci.2003 Mar 22; 270(1515): 649–652. doi:10.1098/rspb.2002.2260


 

0 0